상상력을 깨우는 놀라운 세계

by 행복한독서

우린 어디로 가나요?

카테리나 보로니나 글·그림 / 박정연 옮김 / 64쪽 / 18,000원 / 바닐라동물원



아마도 놀이터인 곳을 종횡무진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두 친구가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사이 중요한 순간은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안나가 화자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찰나에 때마침 엄마가 나타난다. 비밀을 듣지도 못한 채 엄마 손에 이끌려 버스 뒤쪽 창밖으로 멀어지는 안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다행히 서로가 가진 공룡 인형을 바꿔 들었다. 이제 안나의 핑크빛 트리케라톱스는 아이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엄마 말처럼 이 여행이 멋질지는 미지수다. 아이는 아직 안나의 비밀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기차가 날아다닌다면 몰라도 멋진 건 아직 안나의 비밀뿐이다. 여행을 간 사이 안나가 다른 친구에게 비밀을 말해 버릴까 봐 신경도 쓰인다. 그렇게 안나에게서 듣지 못한 비밀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생각조차도 없다.


그러나 상황은 바뀐다. 기차에서 내려 엄마를 따라 겹겹이 산이 들어선 길 앞에 멈춰 누군가 가꾼 듯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는 산의 모양새에 감탄한다. 양팔을 뻗어 고양이를 만질 때처럼 쓰다듬고 싶을 정도다. 그토록 자신을 사로잡았던 안나의 비밀은 이제 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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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혹은 다섯의 컬러가 대표색으로 쓰였다. 제한된 색들이 서로 보완하며 훨씬 더 많은 색으로 보이게 만드는 작업을 좋아하는 작가다. 둘이나 셋 혹은 전부를 흐리게 혹은 진하게 섞어가며 무한히 변주가 가능하나 독자의 시선을 시원하게 사로잡은 건 녹색과 핑크다. 핑크는 작은 부분에 쓰였어도 읽기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만큼 강렬하다. 마치 ‘비밀’처럼. 그러나 내용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란 말 하나에 사로잡혀 처음 만나는 세계를 즐기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독자는 핑크를 따라가다 장면 속 다른 풍경을 놓치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숲과 건축물 틈에는 실재하는 동물이나 상상 속 존재들을 숨겨두어 비밀을 밝혀내듯 찾아보는 그 자체로 놀이가 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건 어린 시절의 특징이다. 아마도 화자인 아이가 언젠가 읽었던 책이나 친구에게서 들었음 직한 이야기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작품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 꿈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속 배경 그림을 그리거나 박물관 벽화를 공동으로 작업하는 작가의 삶도 담아둔 듯하다. 선보다는 면 중심으로 농담을 조절한 채색이 전체 화면을 흐르는 곡면과 배경 전체를 일렁이게 만든다. 시공간을 환상적으로 구현하는 데 적절했다. 아이로선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을 테고 우리 삶 역시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멋진 일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다. 돌아온 친구에게 안나가 비밀을 들려주리란 당연한 믿음도 함께.


김혜진_그림책보다연구소 대표, 『야금야금 그림책 잘 읽는 법』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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