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를 위한 사랑과 관계의 변화

by 행복한독서

콧수염 씨와 커다란 어항

전승주 글·그림 / 56쪽 / 16,000원 / 시공주니어



자신의 몸집보다 커다란 물고기에게 까치발을 딛고서 밥을 주는 한 남자의 모습과 뒤표지의 유리병 속 작은 물고기의 모습은, 이 둘의 관계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조용히 암시한다. 『콧수염 씨와 커다란 어항』은 성장과 자립의 이야기이기 전에, 사랑이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모험가 콧수염 씨는 숲속 작은 연못에서 힘없이 헤엄치던 작은 물고기를 발견하고 모험에 초대하며 관계를 시작한다. 물고기에 푹 빠진 콧수염 씨는 어항을 들고 다니기 버거워지자 일상을 함께하기 위해 바닷가 집에 정착한다. 물고기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자신의 삶을 조정해 가는 콧수염 씨의 모습은 많은 돌봄 양육자가 경험하는 ‘삶의 중심이 돌봄 대상에게로 옮겨가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콧수염 씨는 물고기가 마음껏 자랄 때 행복해진다고 믿고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다. 물고기가 계속 자라 더 큰 어항이 필요해지자 아래층을 비워 커다란 어항으로 바꾸고,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어항 속에서 물고기와 함께 지내는 걸 선택한다. 사랑의 방향이 한쪽으로만 흐르기 시작할 때 관계는 균형을 잃는다. 콧수염 씨는 물고기의 성장을 위해 자신을 소진하고, 물고기는 콧수염 씨가 자신의 성장을 보며 기뻐한다고 믿었기에 멈추지 않고 자란다. 정작 물고기가 원했던 것은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햇살 아래 콧수염 씨와 함께하는 시간이었음에도 말이다. 서로를 위해 참고 견디는 사이 어항은 두 사람의 삶을 소진해 가는 공간이 되어간다.

그림3-콧수염 씨와 커다란 어항_본문.png

함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결과, 물고기는 집 안 전체를 차지할 만큼 커져 역설적으로 둘이 함께할 수 없게 된다. 콧수염 씨의 삶도 위태롭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자기 헌신과 희생은 돌봄이 길어질수록 그 자신을 돌보는 일은 뒤로 밀어 소진될 위험에 처한다. ‘조금만 더’라는 마음이 커질수록, 관계의 형태를 바꿔야 할 시기를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게 한다.


물고기는 ‘콧수염 씨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새로운 선택을 한다. 둘을 돌봄의 관계로 가두던 어항을 깨트리고 바다로 나아가 콧수염 씨의 사랑과 돌봄이 충분했음을 보여준다. 충분히 사랑했기에, 이제는 서로 다른 삶의 방향을 인정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했음을 조용히 보여준다.


이번에는 물고기가 콧수염 씨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한다. 다시 배를 만들어 물고기에 이끌려 먼바다로 나아가며 외치는 콧수염 씨의 이 말은 소진되었던 그의 삶이 회복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으음! 모험을 떠나기에 딱 좋은 날이야!”


오현수_『라키비움 J』 에디터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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