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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ug 23. 2021

울타리 너머

들판으로 달려가는 용기

울타리 너머

마리아 굴레메토바 글·그림 / 이순영 옮김 / 36쪽 / 13,000원 / 북극곰



울타리 너머에 세상이 있습니다. 소소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소소는 몇 발짝만 내디디면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기만 할 뿐,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림책의 표지 속, 초록 가득한 풍경 속 소소의 뒷모습은 이내 독자를 소소의 옆자리로 불러들이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경계에 서서 소소와 함께 울타리 밖의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소소는 왜 울타리 안에 서있는 걸까요? 


그림책의 첫 장, 커다랗고 단단해 보이는 집의 모습이 보입니다. 소소와 함께하는 이 공간은 안다만을 위한 공간이고, 안다는 소소와 소통하지 않는 놀이와 대화를 합니다. 안다는 소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알고 싶어 하지도 않죠. 소소는 안다와의 관계에서 마치 놀이 인형처럼 존재합니다. 커다란 거울은 안다만을 비추고, 소소는 어울리지 않는 모자와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의자에 외롭게 앉아있습니다. 

소소는 거대하고도 일방적인 안다와의 관계를 거부할 수 없으며, 익숙해져버린 불편한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관계에서 느껴지는 일방적인 힘은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 사회에서의 관계, 더불어 정치적인 관계에서도 존재합니다. 강함과 약함에서 오는 힘의 불균형과 억압, 소통하려 하지 않는 마음은 상대를 소외시켜버립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통의 방법을 알지 못했던 안다는, 자신에 대한 배려와 소통, 즐거움의 방법도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림책 속 함께하는 소소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듯 안다의 얼굴도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소소가 안다와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안다 또한 자신만의 커다란 벽에 갇힌 듯 외로워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다와의 일방적인 관계는 소소의 마음속에 구멍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답답하고 단단한 안다만을 위한 집에서는, 소소의 마음속 구멍을 채울 수 없죠.



어두운 방 안 창문을 바라보는 소소, 창문에는 들판의 풍경이 가득합니다. 산책에서 만난 산들이는 울타리 밖의 초록 들판으로 같이 달려가자고 합니다. 울타리 너머의 공간은 바라보기만 하는 공간이 아닌 힘껏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곳이었죠. 또한 그곳은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과 위협이 있는 곳임을 산들이는 이야기합니다. 

울타리는 소소의 마음속에 만들어놓은 경계의 모습이며, 울타리를 넘어간다는 것은 세상의 진정한 모습을 알았을 때 더욱더 의미 있고,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에 대한 존중과 진정한 세상을 대하는 용기가 어우러질 때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소는 더 이상 안다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소소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요. 왕의 옷을 입은 안다 맞은편에 광대 옷을 입은 소소는 조용히 결심한 듯 의자를 내려옵니다. 이제 소소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합니다. 서두르지 않는, 고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광대의 옷을 벗어버리고 들판으로 나아갑니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 안다의 집과 울타리 그리고 소소와 산들이가 달려간 들판 풍경이 화면 가득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마음속에 하나의 질문을 만들어놓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조미자_그림책작가, 『불안』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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