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퍼시, 무지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투쟁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브래디 미카코 지음 / 김영현 옮김 / 292쪽 / 14,000원 / 다다서재
2019년 늦가을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소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단어의 충격 효과를 준 『아이들의 계급투쟁』의 저자 브래디 미카코가 최근 쓴 책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까지 영국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의 ‘저변 탁아소’에서 보육사로 일하며 빈곤 가정 유아들의 세계를 관찰하던 시간에서 나와, 어느덧 불쑥 자라 중학생이 된 아들의 일상을 담은 책이다.
이 책 또한 전작에서 주로 조명했던 빈부격차와 복잡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배제를 다루고 있으나, 조금 더 진전된 내용이 있다면 ‘다양성’과 ‘엠퍼시(Empathy, 공감, 감정이입)’에 대한 강조이다.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이라는 책의 부제가 나타내듯이, 영국 사회에서 이주민 가정의 동양계 외국인으로 사는 모범생 아들의 중학교 생활이 생생히 묘사되면서, 저자는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일상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사실 정치, 사회복지, 공교육 제도 같은 거시적인 주제와 영국 남쪽 끄트머리의 가난한 동네 브라이턴의 구 공영주택지에 사는 이주민 가정의 삶은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가 관찰한 “온갖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다만 이러한 씁쓸하고도 익숙한 경험이, 항상 선진국이라고만 생각했던 영국에서도 노골적인 민낯을 드러낸다는 것을 재확인할 뿐이다.
그 낯설지 않은, 익숙한 풍경 속에서 저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차별과 폭력의 복잡한 양상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중학생 아들의 절친한 친구인 다니엘은 이민자와 유색 인종을 배척하고 동성애를 혐오하는 ‘또 다른 이민자’였고, 백인 노동자 계층인 친구 팀의 도둑질을 혼내준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건 팀에게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중산층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차별과 폭력의 정당화 논리 안에서 저자가 혼란을 느끼는 사이 아들은 “모두 다른 게 당연하잖아”라고 말하며 싸우고 고민하고 돌파하고 성장한다.
다양성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어렵고 귀찮지만 무지를 없애기 때문에 좋은” 거라는 그녀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특히 우리는 엠퍼시와 심퍼시(Sympathy, 동정, 연민)라는 단어를 종종 혼동한다. 저자는 사전적 정의를 찾으며 심퍼시는 ‘감정’ 또는 ‘행위’지만 엠퍼시는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 즉 ‘지적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엠퍼시는 우리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잘 발달시킬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이 아닌가.
브래디 미카코의 희망 속에서 한나 아렌트가 말한 ‘탄생성’의 기적을 떠올렸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탄생성에 행위 능력이 있으며, 이 능력을 완전히 경험하는 것만이 인간사에 희망과 믿음을 부여할 수 있다던 아렌트의 선언. 그리고 우리가 다양성에 대해 지속해서 배우고 성찰하여 엠퍼시라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같은 인간들은 계속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저자의 보육사 시절 스승이었던 애니의 말에서 우리는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회, 일반)
오빛나_㈔행복한아침독서 사회공헌부 차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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