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이야기

어두운 밤에 펼치는 핑크빛 자장가

by 행복한독서

밤의 이야기

키티 크라우더 글·그림 / 이유진 옮김 / 80쪽 / 15,000원 / 책빛



베드타임 스토리 그림책은 잠옷 같은 면이 있다. 말 그대로 잠잘 시간을 맞은 아이의 잠자리 곁을 포근하고 따스하게 돌보는 기능이 우선이다. 포근하고 편안한 잠옷이 근사한 디자인과 색감을 갖추기 쉽지 않듯이, 이런 부류의 그림책도 예술성을 갖추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잘 자요, 달님』(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 클레먼트 허드 그림)『달님 안녕』(하야시 아키코 글·그림)은 기능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귀한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이 책들을 볼 때면 ‘세상 곳곳 가정의 어린아이 잠자리 곁 바구니 속에 담겨있는 그림책이 도서관의 그림책 고전 서가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명작이라니!’라고 감탄하면서 ‘한 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나는 책이 모두 그런 명작이라면!’이라는 소망을 덧붙이게 된다.


‘밤이 와도 잠들지 못하는 어린 곰에게 엄마 곰이 들려주는 밤의 이야기’라면 흔하고 흔한 베드타임 스토리 그림책의 단골 설정이지만, 당대 그림책 명장으로 손꼽히는 벨기에 작가 키티 크라우더의 작품이라면 책장을 펼치는 마음이 각별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표지부터 시작해 그림책 전체에 흐르는 밤의 색깔이 핑크 일색이다(필자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파란 밤을 처음 만난 이후, 이 핑크에서 좀 다른 의미로 충격받았다. 한국인에게 ‘밤’과 ‘핑크’의 연관은 석연치 않은 법이다). 너무도 근사하게 전편을 장악하는 이 핑크는 작가의 창의적 이미지라기보다, 어린 시절에 스웨덴 태생 어머니 덕분에 누린 이야기 세계와 그 행복감의 기억이 빚어낸 색깔로 자연스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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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곰이 어린 곰이 원하는 만큼의 이야기를, 어린 곰이 원하는 순서대로, 어린 곰이 선택하는 레퍼토리로 들려주는 모습도 감동을 준다. 독자는 책 속의 아이가 정하는 대로 세 편의 이야기 세계를 들어가고 나오면서, 너도밤나무와 떡갈나무와 자작나무가 울창한 북유럽 숲속 정령과 요정들의 밤을 만나게 된다. 작가가 누렸던 서사를 비슷하게 즐기며 성장해 매혹적인 서사와 그림을 남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토베 얀손, 엘사 베스코브 같은 스칸디나비아반도 작가들, 그들의 작품을 즐기며 성장한 작가 키티 크라우더의 이 멋진 그림책 장면 장면에는 선배에게 바치는 후배의 오마주가 풍성하다. 그래서 『밤의 이야기』 마지막 장면을 덮고도 거듭거듭 첫 장면으로 돌아가는 도돌이표 독서를 하게 되니, 책 좀 읽은 어른 독자의 침대 곁에는 두지 않는 편이 좋다.


이상희_시인, 그림책작가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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