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피터가 주인공인 『피터의 의자』(시공주니어)와 『눈 오는 날』(비룡소)은 여동생 아기를 질투해서 가출을 시도하고,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작품입니다. 출간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두 작품을 쓰고 그린 에즈라 잭 키츠는 아이들의 좌절과 절망, 불안과 고독을 잘 아는 작가입니다. 어린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언제나 해피엔드를 선사했던 그는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는 아이들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작가는 아이들이 원하는 건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똥’이라는 한 글자에 웃음을 터트리고 ‘방귀’라는 두 글자에 배꼽을 잡는 아이들. 옛이야기 그림책을 볼 때는 착한 사람이 힘든 상황에 빠지는 것을 아파하고 동정하는 반면 악한 사람이 벌을 받으면 기뻐하고 통쾌해합니다. 아이들은 권선징악형 스토리의 핵심인 ‘시적 정의’에 민감하기 때문이지요. 등장인물을 선악의 구도로만 보는 단순함은 유아들의 매력입니다.
반면 생각이 복잡하고 걱정 많은 어른들은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경험과 결부시키는 의미의 독서를 하기에 순수한 눈으로 그림책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도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내용을 얼마만큼 기억하는지 확인합니다. 아이가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화가 나고 같은 그림책만 계속 읽어달라고 조를 때는 독서 편식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합니다.
그림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즐거움과 휴식인데 어른들의 욕심과 불안이 어린 독자들의 그림책 읽기 놀이를 방해하는 건 아닌지 한번쯤 짚어봐야 할 일입니다. 아이들의 마음 세계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계신가요? 하나의 질문으로 그림책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놀이에 몰두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의성과 상상력을 갖추게 된 유희적 인간을 명명하기 위해 문화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놀이를 처음으로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는 인간의 본원적인 특징이 사유나 노동이 아닌 놀이임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놀이는 아이들에게 성장의 동력이자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으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놀이의 가치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이런저런 놀이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유아기의 발달은 놀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놀이는 유아의 생활 그 자체이며 유아들은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현대 교육을 창시한 프뢰벨은 “놀이란 인간 본성의 자유로운 활동의 표현이며 연습”이라고 정의했는가 하면, 교육자 존 듀이는 놀이를 “영유아의 문제 해결력을 증진시키는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의 놀이 세계를 다양하게 그려내는데요. 가족이나 친구와의 놀이, 동물과의 놀이, 혼자만의 놀이, 무엇보다 또래 친구와의 놀이가 가장 재미있지요.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욕구를 유쾌하게 그린 『곰아, 자니?』(북극곰)는 놀이하듯 읽기에 맞춤인 그림책입니다. 이웃에 사는 곰과 오리는 매일 티격태격하지만 오랜 친구 사이랍니다. 깊은 밤 오리는 곰과 놀고 싶어서 다짜고짜 찾아가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툭 한마디 던지죠. “곰아, 자니?” 달콤한 잠에 빠지려는 순간 오리의 방문에 곰은 화들짝 놀라 일어납니다. 곰은 가까스로 화를 누르며, 오리를 돌려보내지만 눈치 없는 오리는 자꾸만 찾아와 이런저런 놀이를 하자며 졸라대지요. 머리끝까지 화가 난 곰은 결국 소리를 지르고 실망한 오리는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책을 보다가 잠이 듭니다.
『곰아, 자니?』는 밤낮없이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우정을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실망하고 토라지지만 금방 화해하고 서로를 찾는 곰과 오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요.
놀이의 힘을 잘 묘사한 『강아지와 염소 새끼』(창비)는 권정생 선생의 동시와 김병하 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진 시 그림책입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얼룩 강아지가 풀을 뜯고 있는 염소한테 다가가 같이 놀자며 채근합니다. 새끼 염소는 귀찮아 못 본 체 하지요. 그런데도 강아지는 눈치 없이 새끼 염소 주위를 맴돌고 심지어 등에 올라타기까지 합니다. 골이 난 염소는 이제 막 돋기 시작한 뿔로 강아지를 떠받으려고 시도하지만, 줄에 묶여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친구를 계속 놀리는 강아지와 골이 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새끼 염소. 강아지의 즐거움도 잠깐, 새끼 염소의 분노에 깊숙이 박혀있던 말뚝이 뽑혔습니다.
겁 없이 까불던 강아지와 자유로운 몸이 된 새끼 염소는 너른 언덕을 종횡무진 달리며 쫓고 쫓기는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언덕을 내달리는 어느 장면부터 강아지와 새끼 염소가 웃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트기가 굉음을 떨구며 지나가는 바람에 둘은 놀라 온몸으로 서로를 껴안고 한마음이 되지요.
새끼 염소는 골내던 일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다 잊어버렸습니다. 놀이는 이처럼 화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화해를 하게 만듭니다. 강아지와 염소 새끼는 우리 아이들을 닮았습니다. 싸우고 울고 하지만 돌아서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노는 걸 보면 신기하고 부럽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스스로 용감하다고 믿으면 용감해진다.” 모험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요.
『꼬마 여우』(여유당)는 모험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동굴 밖으로 나온 꼬마 여우가 새를 따라갑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무척 추웠지만 꼬마 여우는 처음 보는 바깥세상이 신기해서 계속 여행을 하지요. 길을 잃기도 했지만 앞으로 나아갑니다. 넓은 들판에 이르러 소떼를 만나고 고사리 풀밭에서는 작은 고슴도치도 만납니다. 또 조금 무서워 보이는 누군가와도 마주치지만 곧 좋은 친구란 사실을 알게 되지요. 무서운 밤을 맞이하기도 했고요.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동굴로 돌아온 꼬마 여우는 어느새 새로운 모험을 꿈꿉니다.
짧고 단순한 글이지만 ‘모험을 통한 성장’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모험’의 세계로 떠나는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해서 아이들을 신나게 하지요. 모험 길은 안전하지만은 않아서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아이들은 도전에서 오는 성공과 실패, 시행착오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들의 일상도 모험의 연속입니다. 집과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풍경, 냄새, 친구들을 만나며 호기심을 채우고 예기치 못한 위험을 이겨내고 돌아온 꼬마 여우의 모험담은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유아들에게 용기를 심어줍니다.
어떤 이익이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한 행동을 이타적 행동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돕는 행동을 뜻하지요. 4~6세가 되면 유아들은 진정한 돕기 행동을 보입니다. 그전에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동정을 일부 나타내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자기희생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가상 놀이를 하면서 가끔 친구에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4~6세가 되어야 실제 생활에서 돕기 행동을 실행합니다.
『찾았다!』(비룡소)는 꼬마 곰의 이타적 행동으로 인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작은 곰은 숲속에서 아주 멋진 토끼 인형을 발견합니다. 토끼네 집을 찾아주기로 결심한 작은 곰은 주인을 찾는 광고지를 만듭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여기저기에 광고지를 붙여보지만 아무도 토끼를 찾으러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토끼와 소풍을 가고, 숨바꼭질도 하고, 그네를 타며 함께 시간을 보내던 작은 곰은 어느새 토끼와 같이 살고 싶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 토끼 인형의 주인인 큰 사슴을 만납니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큰 사슴은 꼬마 때 갖고 놀았던 인형은 꼬마한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보살펴달라는 부탁과 함께 작은 곰에게 흔쾌히 토끼 인형을 양보합니다. 이보다 깔끔하고 완벽한 마무리가 또 있을까요?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옳은 일을 했을 때 돌아오는 선한 결과는 어린 독자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어른들께 부탁드립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시공주니어)에 나오는 맥스를 자주 떠올려 주세요. 짓궂은 장난을 치는 맥스를 향해 엄마는 “이 괴물 딱지 같은 녀석!” 하고 소리칩니다. 맥스도 소리치지요.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 이 책은 1963년 출간 당시 어린이의 내면세계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솔직하게 표현되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육자들의 혹평과 우려에도 아이들은 맥스와 괴물 소동에 열광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의 내면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까요.
건강한 아이의 내면에는 괴물이 숨어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 괴물이 위험하게 느껴지겠지만 아이에게는 생명력입니다.
어른에게는 모든 아이들이 반듯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주는 일입니다. 미국의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어른이 그들 자손과 사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거라고 했습니다.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 교수는 아이들에게 독서의 첫 단계는 ‘듣는 독서’이며 아이들은 부모가 읽어주는 책을 보면서 독서가 사랑과 연관된 아름다운 일임을 배운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림책으로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순수한 애정을 바탕으로 할 때 그림책 읽기가 즐거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진도 나가듯 텍스트 읽어주기에 급급하거나 하루 몇 권이라는 규칙을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아이의 마음이 되어 그림책에 풍덩 빠져보면 어떨까요. 어떤 그림책이든 좋습니다. 몇 살 때 어떤 그림책을 보여주느냐의 문제보다 어떻게 교감하는지가 더 중요하니까요.
김은아_그림책 칼럼니스트, 마음문학치료연구소장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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