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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나뚜기
Mar 03. 2021
한겨울 보일러고장 난집에 사는내 새끼
5. 대위 오뚜기
30년 가까이 된 15평짜리 군 관사에 살았다.
거실은 한쪽 벽에 몸을 붙이고 앉아 다리를 쭉 펴면 다른 쪽 벽에 다리가 닿을 정도로 작았다.
외풍이 너무 심해 아무리 창문과 문을 막아도 찬기운이 계속 들어왔다.
보일러를 24시간 틀다싶이했지만 집에는 한기가 계속 돌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켜 집에 돌아오면 한기 가득한 집에서 아이와 도저히 외투를 벗고 있을 수가 없어 외투를 입고 있었다
.
하루는 날씨가 추워 세탁기까지 얼어버린 날이 있었다.
세탁기가 얼어버려 안절부절못하는 날 위해 부대 동료가 잠시 우리 집에 와서 도움을 주었는데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패딩을 입고 있는 아이와 나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그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하느라 이렇게 산다 쳐도, 이런 나를 엄마로 만나 이렇게 사는 내 새끼는 무슨 잘못인가 싶었다.
그 길로 지휘관을 찾아갔다.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났고, 집에서 아이와 패딩을 입고 지낸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이 집에서 더 이상 계속 살 경우, 나의 자존감이 추락을 하고 삶의 만족도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
3동으로 가고 싶습니다."
3동!
그곳은 최소 10년 이상의 군생활을 한 영관장교나 상사급 이상의 간부들이 사는 넓은 평수의 집이었다.
(넓은 평수라고 해봐야 20평의 아파트였지만 나에게 20평 아파트는 운동장과 같았다.)
나 같은 초짜 대위 나부랭이가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단 1프로의 확률도 내 아이가 좀 더 넓고 좀 더 따뜻한 환경에서 살 수만 있다면, 내가 욕먹는 거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의 발언으로 인해 부대 내에 고위간부들의 회의가 소집되었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위관급 장교가 3동을 살고 싶다고 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3동에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들만 살아야 한다는 법칙이나 규정도 없었다.
단지, '지금까지 통상 그래 왔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3동엔 공실이 있었고, 내가 입주를 못하는 결격사유를 가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복지 심의를 통해 3동 입주 허가가 났다.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
3동에 입주한다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부럽다~"
방법은 간단했다.
난 실행을 했을 뿐이다.
나의 고충을
해결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에게 말했을 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비난받기 두려워, 거절당할까 두려워 '그냥 내가 참지 뭐..' 라며 넘겨버릴 수 있었겠지만.
난 그러지 않았고 그럴 수 없었다.
난 엄마였기 때문에.
일부러
새로 받은 아파트에 도배와 장판을 새로 싹 했다.
보통 군인아파트는 장교들은 사는 기간이 오래지 않고 내 집이 아니다 보니 도배와 장판을 내 돈 들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난 묶은 때를 벗겨내고 싶었다.
깨끗해진 집에 아이와 들어가던 날..
아이가 뛸 듯이 기뻐했다..
거실이며 방이며 돌아다닐 곳이 너무 많은지 이곳저곳을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지금도 난 힘이 들 때면 그때의 나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절대로..... 정말 절대로 다신 보일러가 고장 나서 아이에게 집에서도 패딩을 입혀야 하는 그런 삶은 살지 않겠다고.'
그때의 내 상황은 나를 열심히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사는 상상을 하곤 했다. 처음부터 인생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면 나도 노력하면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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