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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뚜기 Mar 01. 2021

아무짝에 쓸모없는 임산부

4. 중위 오뚜기

코브라 조종사가 되어 부대를 배치받았고,

대학시절부터 인연을 키워나가던 사람과 결혼도 했다.

결혼 이후에도 난 여전히 코브라 조종사였고,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비행을 했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임신 테스기에 두줄이 생긴 그다음 날부터 나의 삶은 180도 변화했다.

16년 2월. 작은 천사가 우리 가족의 곁으로 와 주었다.


원하던 임신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실인 아이가 생겼고, 두 사람이 꿈꾸던 미래였다.


하지만 군에서 나에게 내린 조치는

" 비. 행. 정. 지"


당연한 조치였다.

임신한 여성이 공격헬기를 타고 임무를 할 순 없으니까.. 아이를 위해서도, 산모를 위해서도, 군을 위해서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였다.


하지만 조종사에게 비행을 하지 말라는 건..

나의 존재의 이유를 흔들어 놓는 "사형선고"

였다.

모든 비행훈련에서 제외되었고, 그 누구도 나에게 작전에 대해, 훈련에 대해 상의하지 않았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지만, 추락하는 나의 자존감을 잡을 길이 없었다.

아이를 위해 태교를 위해서라도 행복한 마음,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지만 행복하지가 않았다.


존재 자체의 이유에 대해 의심받는 상황에서..

내가 봐도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은 그런 상황에서..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우면 얼마나 즐거울 수 있을까.


일부 동료들의 "훈련 안 해서 좋겠다"

라는 비아냥 섞인 말도 견뎌내야 했다.


"여자가" 괜히 군인을 해서

"여자가" 괜히 조종사를 해서

내가 임무를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내 임무를 나눠서 대신해야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니 더더욱 자신감이 없어졌다.


어차피 군이라는 남성성 짙은 집단에 들어온 이상, 임신에 대한 엄청난 이해와 배려를 바란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나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 것도 전혀 없으나..


나 스스로가 너무나 힘든 시기 었다.

내 존재의 이유가 흔들리는 그 순간.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아이를 낳은 후는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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