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이, 요상한 우리

나, 너, 우리

by 행부작가


나는 우리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겉돌았다. 우리라고 하기엔 나는 좀 이상한 아이였다.


하루는 친구가 물었다. "ㅇㅇ 있잖아. 걔 요즘 무슨 일 해?"

"잘 몰라."라는 대답에 친구는 "왜 몰라? 친구 아냐?"라고 되묻는다. 때론 소개팅했던 사람의 가족관계를 물어도, 사생활을 물어도 내가 아는 건 없다.

"왜 아는 게 없어?"라는 말은 내가 듣는 단골 질문이었다.


왜 아는 게 없을까?

불편할 것 같은 질문, 사생활은 물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말해주지 않았을까?라는 마음. 그때 나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잘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중고등학교 시절 반 아이들은 S.E.S, H.O.T, 젝키, 신화 등 정말 많은 연예인을 좋아했고 그들의 사진, 물건들을 사 모았다. 나는 중1 때 H.O.T 캔디 모자와 집게핀을 동생이 생일선물로 사준 기억이 난다. 생일 선물이라 한동안 내 옷장 속에 보관했던 추억이다. 그 외는 고등학교 때 콘서트에 간 친구한테 구매한 토니안 사진 2장 정도가 내 연예인 덕질의 전부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고 만화책, 소설책에만 환장한 난 그들이 보기엔 이상한 아이였다. 그때 내 이상형은 만화책 남주고 내 덕질은 오로지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때 사모았던 수많은 불법 <?> 비디오와 CD, 애니메이션 사진과 만화책, 브로마이드, 수첩, 다이어리 등 내 덕질은 끝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추억 중 하나는 수학여행 가서 친구와 '세일러문'보다가 저녁을 못 먹을 뻔한 기억이다. 세일러문 스티커북을 사서 창문에 붙여놓고, 마법소녀 리나 <원제-슬레이어즈>의 주문을 수첩에 적어놓는 이상한 아이. 그게 나였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오타쿠 느낌이지만... 그냥 좋아하는 만화가 바뀌면 이상형도 바뀌는 변덕 심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이 변덕은 여전하다. 이 드라마 보면 이 남주가 좋고, 저 드라마 보면 저 남주가 좋다. 그걸 봐선 캐릭터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나이가 먹을수록 그냥 잘 생긴 게 힐링이고 눈호강인 마음만 소녀다.



현실세계의 인물보다 드라마, 소설, 만화 속 인물관, 세계관이 좋은 나는 지금도 이상한 사람일지 모른다.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도, 갑자기 전학 간 학교에서 적응을 못할 때도, 사춘기에도... 내 옆엔 소설책이 있었고, 만화책이 있었다. 내가 힘이 든 순간마다 나를 위로해준 건 그 안의 캐릭터였다.


내 바닥, 나조차 싫은 내 모습. 나는 그걸 보기보다 외면했다. 내게 가상의 세계는 쉼터고 위안이었다.


이상한 아이,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아이, 남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 그런 모습 모두 내가 맞다. 내가 말하기 싫은 것이 있기에 말해주기 전엔 캐묻지 않고, 상처받기 싫기에 약간의 거리를 둔다. 다가가고 싶지만 나를 오픈하고 싶지 않기에 머뭇거린다. 우리에 속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우리 안에 확 뛰어들지 못한다. 나는 겁쟁이였다.




나는 이상한 아이였다. 내 세상은 좁았다. 넓히다가도 다시 작아졌다.


그러다 나도 우리에 속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너와 만났다. 괜찮다 말해주고, 할 수 있다 응원해주는 이상한 곳, 요상한 사람들이다.


이상한 나는, 이상한 너들을 만나, 요상한 우리가 되었다. 나는 매일 다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덧붙여 간다.


우리 안에서 비슷하게, 때론 다르게 닮아가고 달라진다. 다른 사람에게 용기 주고 힘내라 말한다. 잘한다 칭찬하며 괜찮다 위로한다. 매일 모든 면에서 달라진다.


낯선 내 모습이 어색하고 낯설다. 익숙하지 않아 자꾸 원래의 내가 잊어버린 빨래처럼 튀어나온다. 이미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어 다음에 새로 빨 때까지 둬야 하는 빨랫감이다. 찝찝함 차오르면 혼자 주물럭거린다. 느리게 빨고 있는 중이다. 한 번에 확! 달라지며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기다리는 중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우리 속에서 더 나아질 나를 생각하며 오늘도 정리되지 못한 글도 발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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