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어릴 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손가락이 길면 게으르다는데….”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재미 삼아 만들어진 일종의 미신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안다는 건 그만큼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누가 더 길고 짧은지 비교해보곤 했다. 그때마다 내 손가락이 길다는 걸 확인하곤 내심 실망했다. 아무래도 나는 좀 게으른 타입인가 보다 하고 말이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게을렀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계속하는 끈기도 부족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 머리맡에 자명종을 5개 두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4살 어린 동생이 깨우는 누나. 그게 바로 나였다.
어른이 되었을 때도 가장 걱정하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건 혼자 살면서 해결되었다. 아무도 깨워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일어나는 게 당연해지면 된다. 내가 벌어 내가 생활하는 자취생활을 하면서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게으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직장에서도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게으르지 않기 위해 할 일의 목록을 짜고 체크하는 것이다. 그런 덕분일까 나는 어린이집에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되었다. 청소 하나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게으른 나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후천적인 꼼꼼함이다. 꼼꼼한 성격이면 좋은 거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나치게 꼼꼼하고 세심한 탓에 결정 장애 증상이 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실천해야 직성이 풀린다.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다.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지레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곤 한다.
예를 들어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지만 지저분한 책상 꼴을 못 보고 정리하다가 시간을 다 쓰는 식이다.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할까 궁리만 하며 미루다가 마지막에 죽을힘을 다하는 것이다. 미루다 보니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녹초가 된다. 전형적인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생각이 든다.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느라 늘 피곤하고 힘들었다. 남들 눈에는 별것 아닌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자책하느라 밤잠을 설친 적도 많다. 남들에겐 한없이 관대하면서 유독 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 지레 겁먹고 포기하곤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걸 보면 완벽주의가 몰랐던 천성인가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생각만 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니 일단 시작이라도 해보자 한 것이다. 부족한 건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탓할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나도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괜찮은 나만 사랑할 게 아니라 나 그 자체를 사랑해야 나아질 수 있다. 그래서 22년에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일단 저질러놓고 채워간 것이다. 100퍼센트 완벽하기보다 80퍼센트만 채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살면서 가장 많은 도전을 했고 이루고 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 해낼 수 있는 꾸준함은 완벽함에 있지 않다. 못한 자신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아질 수 있다고 나를 믿고 응원하는 태도.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