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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Feb 14. 2023

마음이 허할 때 몽글몽글 순두부

-할머니 전상서


간밤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잠들어있는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시는 꿈을 꾸었다.

수줍게 보일 듯 말 듯 떠 있는 하얀 밥알과 분홍빛 진달래 꽃잎을 곱게 띄워 낸 달콤한 식혜 한 그릇을 건네주셨다. 생채기로 조각난 내 마음에 삶의 고단함을 위로라도 하듯이 할머니가 건네주신 식혜 한 사발은 꿈속에서도 달콤했다.

할머니는 막내며느리의 고단한 일상에 도움이라도 줄까 싶어 주방을 책임지고 계셨는데 찬 바람이 억수로 불던 날, 아침 밥상을 차리시다가 우리 집 부엌에서 쓰러지셨다. 그 뒤로 할머니는 12살이던 나보다 더 어린 소녀가 되셨다. 매일 아침 하얀 머리에 가르마를 곱게 가르고 정성껏 빗어 내리시며 거울을 보시지도 않고 머리를 땋아 내리셨던 할머니. 은비녀로 쪽머리를 만드실 때는 마치 심오한 작품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이셨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다며 곁을 떠나지 않고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나에게 발그레 웃어 주시던 할머니는 이제 며느리 손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리고 아픈 소녀가 되어 버리셨다. 밥을 드실 때도 누군가 떠먹여야 주어야 했고, 흘릴까 턱받이도 해야 했고, 어린아이처럼 매일 걸음마 연습도 하셔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의 걸음마 선생님은 내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어린 내 손을 잡으시는 할머니의 손에 힘이 없으셨다. 할머니 몸을 맡길 만큼 힘이 세다고 나한테 기대시라고 했지만 소녀가 되어버린 할머니는 나에게 온전히 당신의 몸을 맡기지 않으셨다. 혹여나 내가 넘어져서 다칠까 봐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낸 뒤 시골로 내려가신 할머니는 봄의 중간쯤 어느 날에 무지개 너머로 떠나셨다.

부모님은  동생들은 다른 곳에 맡기고 가장 예뻐하는 손녀딸이었으니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는 꼭 해야 한다며 나만 데리고 가셨다. 그때까지도 돌아가셨다는 게 하나도 믿기지도 않았고 여느 때처럼 ‘우리 강아지 왔는가~“ 활짝 웃으며 반기실 것만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방학 때마다 나를 반기시던 할머니 집으로 달려간 곳에는 할머니의 아무 표정 없는 사진만 나를 맞이했다. 초상집이라고 하기엔 잔칫날처럼 너무도 시끌벅적해서 오히려 더 슬퍼진 나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니 시위하듯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루 세 끼니를 꼬박 챙겨 드시는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어린 내 마음에 어머니를 보내면서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자식들을 할머니가 보고 계시다면 어린 마음에 슬픈 마음이 드실 것 같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사랑하는 손녀딸이 쫄쫄 굶고 있는 거 보시면 속상해하신다고 어른들이 음식을 챙겨주셨지만 나는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그렇게 사흘을 보내고 처량한 노랫소리에 맞춰 할머니는 꽃상여에 올라타셨다.

"고생한 우리 엄마 떠나는 길이라도 꽃가마 태워드려야 한다 “며 떠나는 할머니에게 아버지는 최고의 꽃상여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셨었다. 어쩌면 꽃가마와 꽃상여는 남게 되는 사람들이 주는 슬픔의 이별 선물인 것만 같았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데, 할머니가 타고 가신 꽃상여의 노랫소리는 이별의 변주곡이었다. 그렇게 한 편의 슬픈 연극을 끝내고 온 것처럼 할머니를 보내고 돌아왔다. 할머니의 체취가 담겨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허전한 어두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순두부를 만드셨다. 부모를 보내드리고 온 자식들의 마음을 부드러운 순두부로 어루만져 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막내며느리의 고단함을 살폈던 음식 있던 할머니를 떠올리셨는지도 모르겠다. 며칠간 고집스럽게 먹지 않았던 어린 나를 위해 엄마가 챙겨주신 몽글몽글 순두부는 슬픔을 거두어갈만큼 너무 맛있었다. 심장 아래가 쿡쿡 아파왔지만 입으로는 부드럽고 고소한 엄마의 순두부는 배앓이를 할때마다 만저주시던 할머니의 약손처럼 속이 편안해졌다.


한동안 엄마는 가슴이 먹먹할 때면  그렇게 순두부를 만드셨다. 나도 엄마도 할머니의 자리는 언제나 그리움이었다. 부드럽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따뜻한 순두부 한 그릇은 나에게 목이 끊어질 듯이 울어대던 열두 살 어린 소녀의 슬픈 그리움이 되어 버렸다. 사는 내내 서늘하게 찾아드는 외로움에 젖어들 때마다 가슴 언저리의  헛헛한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뜨뜻한 아랫목에 누워 "할머니 손은 약손~약손~" 그렇게 밤새 배를 문질러주시던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웠다.

내가 사랑하던 것들, 나를 사랑해 주던 것들이 문득문득 많이 떠오르를때마다 몽글몽글 순두부를 찾는다.


<만월>

홀로 가는 발걸음 힘겨웠던 삶이여

가다가 허기질까 한 입 삼킨 하얀 죽

희미한 눈길 사이로 나비 한 마리 날아가고

먼저 간 벗을 찾아가는 길 외로울까


열려진 문틈으로 풍경소리 가득한데

한평생 흘린 눈물만 메아리쳐 울려오네

나도 아닌 너도 아닌 누굴 위해 살았을까


그을린 얼굴사이 새겨놓은 주름살

끊길 듯 숨길 사이로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마디 굵은 손가락에 처음 낀 금가락지

품어온 이야기는 가슴에 별이 되고

단정한 옷매무새로 달그림자 밟고 가네

2010년 4월 어느 날에 할머니의 꿈을 꾸고 나서 써 내려간 시다.


할머니, 하늘나라 그곳에서는 가고 싶은 곳 맘껏 돌아다니시며 잘 지내시죠?

할아버지는 만나셨어요?

막내아들 일곱 살 때 할머니에게 그 짐 다 맡기시고 홀연히 떠나셨던 할아버지에게 7남매 키우시며 속상한 얘기, 자손들 잘 키워내신 얘기 나누면서 오순도순 잘 지내시는지,

아니면 혼자만 남겨 놓고 떠나신 할아버지가 너무 미워 유유자적 할머니 혼자 소풍을 다니고 계시는지요?

할머니가 어린 나를 앉혀두고 이다음에 할아버지가 몇십 년 만에 만나면 하얀 백발의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를 혹여 못 알아보시지는 않을까 걱정하셨는데 알아보시던가요?

 할머니가 그러셨잖아요.

“이다음에 우리 서윤이 시집 잘 가면 할미 맛있는 거 많이 사줘잉“

하셨는데 제가 시집도 가기 전에 할머니가 떠나셔서 얼마나 속상하던지요.

할머니, 할머니가 제일 사랑하던 서윤이가 이제는 쉰이 훌쩍 넘은 아줌마가 되었어요.

그 사이 증손자 증손녀를 네 명이나 낳아 이제는 결혼할 나이들이 되어 가요.

하얗고 보드라운 순두부를 먹을 때마다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뜨끈한 손두부도 생각나고 푸딩 같던 순두부도 생각이 많이 나네요. 저도 이제는 제법 할머니처럼 순두부도 잘 만들어요. 엄마는 가끔 순두부를 만드세요. 할머니처럼 손주들 먹이신다고 하시지만 아마도 할머니가 많이 그리우신 것 같아요. 올해 딱 할머니의 마지막 숫자의 나이가 되셨거든요. 며칠 있으면 할머니를 위한 밥상을 차리시는데 엄마는 벌써부터 장을 보시고 계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올해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순두부 만들 콩농사가 잘 되어 고소할 것 같다며 흐뭇해하시네요.

할머니 !!우리 며칠 있다가 봬요. 정성스럽게 준비한 밥상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사랑해요,할머니..그리고 많이 그립고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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