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Feb 13. 2023

엄마의 소울푸드 감자 수제비

-숙자 씨의 추억 한 끼


7남매의 막내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은 언제나 늘 애틋했다.

손녀인 나를 향한 애정 또한 아들이 낳은 피붙이라서 애틋함이 그대로 전달된 것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 여름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서 머물다 오곤 했었다.

그러다가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엄마와 아버지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왔다.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부터 농사지은 야채까지 나를 싸매도 될 만큼 커다란 보자기를 머리에 인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서커스단의 곡예사처럼 보였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서도 흔들림 없이 아들의 집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어 발길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할머니는 솥뚜껑 운전사를 자처하셨다.

고생하는 며느리를 위해서가 아닌,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밥상을 차려내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철없으셨던 당신의 아들과 살아주는 막내며느리를 위한 음식들을 만들어 챙겨주셨다는 것을 할머니가 돌아가신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비 오는 어느 날 부부싸움을 크게 하신 엄마는 다음날 부엌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고 계셨다. 무심한 듯 쓱쓱 강판에 감자를 갈아 소금 한 꼬집을 넣으시고는 한참 가라앉히신 뒤 감자 건지와 콩가루 그리고 밀가루를 섞으셨다. 그때부터 엄마는 천하장사가 된다. 이리 매치고 저리 매치고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내리칠 때마다 반죽 그릇은 요란하게 들썩였고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어린 나의 눈에는 엄마의 들리지 않는 한숨 소리가 보여 왠지 무서웠다. 밤새 아빠와 다투시던 엄마가 이불속 어둠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파도처럼 흐느끼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 엄마가 도망가면 어떡하지?’


한참을 힘차게 반죽을 치대던 엄마의 팔에 힘이 빠질 무렵 엄마는 한결 평안한 얼굴이 되었다. 입가에 살짝 미소까지 덧붙이고 커다란 솥에 멸치를 넣고 마늘을 다져 넣고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얄팍하게 감자를 썰어 넣고 커다란 악어 입에 먹이를 주듯 한입 한입 수제비 반죽을 얄팍하게 뜯어 솥에 밀어 넣었다. 다 끓을 때쯤 호박은 반달 모양으로 살짝 두툼할 정도로 썰어 넣고 액젓으로 마지막 간을 맞춘다. 김치 한 사발과 고추 다데기 양념장을 챙겨 밥상을 차리시면서,

“아무리 똑같이 끓인다고 끓여도 할머니 맛이 안 난다...

오늘따라 할머니가 많이 생각나네...”

반죽을 치대느라 힘을 다 뺀 듯 기진한 엄마는 밥상 위에 수제비 한 그릇을 앞에 놓고 할머니 얘기를 하셨다. 그리움 묻어나는 엄마의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엄마의 새까만 오장육부의 상처는 그렇게 잠깐씩 할머니 손맛의 그리움으로 치유했다는 것을 한참 후 나는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숨이 차오를 만큼 삶에 버거움이 치고 올라올 때마다 엄마가 해주시던 감자수제비를 만들었다. 그럴 때에는 쫄깃함을 포기하고 물을 좀 더 넣고 부드러운 수제비 반죽을 만든다.  

고소한 콩가루를 넣고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다 보면 어느새 뽀얀 피부처럼 반죽에서 윤이 난다.

얄팍하게 속살이 비추도록 오래도록 반죽을 늘려가며 묵묵히 수제비를 떼어 넣는 내 모습을 보며 큰 딸이 한마디 한다.

“엄마 오늘 무슨 일 있어?”

그때 알았다.

누군가를 위해 만든 음식이 곧, 나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선택한 나 스스로의 응원이었음을.

걸쭉해진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떠먹는 시원함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감자 수제비 한 그릇은 그렇게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사랑스러운 딸에게도 남겨지는 추억 한 끼가 되어 준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오늘은 평안하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