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Apr 14. 2024

글 읽다가, 울컥

-그리움에 쌓인 연포탕.

배가 허기질 때 밥 집을 찾듯, 마음이 고플 땐 서점을 찾는다. 읽을 들이 눈앞을 채우고 나서야 한 끼 배를 채우듯 포만감이 든다. 100일 가까이  책을 펴면 이유 없이 글멀미를 하듯 속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책도, 글도 한 줄 쓰지 못하고 지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지난겨울, 환절기 몸살을 앓듯 지독한 사람 몸살을 앓았다. 논바닥 갈라지듯 건조해진 마음의 땅을 살려야 했다. 그래서 일이라도 붙잡아보자는 생각으로 올해의 첫 목표인 정부지원사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석 달간 지원서류와 씨름하며 지냈다. 처음 써보는 지원사업! 그동안 서윤당을 운영하면서 얼마나 대책 없고 계획 없이 회사를 운영했는지 뼈저리게 느끼며 현타가 오기도 했다. 꼭 한 번은 이런 점검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원서를 쓰면서 내 머릿속에 생각을 정리해 가는 시간들이 버겁기도 했다. 중간중간 그만둘까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여기서 멈추면 두 번 다시는 지원사업에 눈도 돌리지 못할 것 같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가며 결국 마감을 했다. 그러고 나니 글자만 봐도 울렁거리는 멀미증상이 나타났다. 책 서너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눈의 초점이 흐려지며 두통이 몰려왔다.


그러다가 편성준, 윤혜자 작가님 부부의 소행성 워크숍 모집글을 보고 덜컥 지원해 버렸다. 뭔가 계기를 만들어서라도 앓고 있는 글몸살의 회복을 위해 빨리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두 번째 수업을 마치고 과제를 받고 서점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가판대에 깔려있는 책들의 구성과 내가 쓰고 싶은 책의 에세이 분야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 셰프의 신간을 발견하고 한쪽 책꽂이 벽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단숨에 책의 반을 넘게 읽어 내려갔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 얘기를 추억하며 써 내려간 '밥 먹다가, 울컥'은 나에게 글 읽다가 울컥 안겨 주었다.  그리운 사람 이야기, 서럽고 고달픈 주방 이야기, 사라져 가는 것들의 동시간대에 사는 글쓴이의 마음을 훔쳐보듯 나의 그리움도 얹어져 한참을 먹먹하게 가라앉게 했다.


빛나는 기억보다 빛나지 않는 기억들이 더 오래 남겨지걸까.

나의 10년 전 생일날 눈 꽃처럼 소복이 차오른 벚꽃나무 아래서 딸들과 함께 즐겼던 망중한의  즐거움이 울컥, 그리움으로 찾아오고야 말았다. 마음이 저만치 주저앉았다. 아프고 힘든 시간은 잊히지 않고 지나간 것들은 늘 그리운 법인지..  



박찬일 작가의 책 속에 연포탕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유독 낙지를 좋아하셨던 시어머님이 생각이 났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거나 계절이 바뀌어 기력이 약해질 때면 어머님은 낙지를 사 오셨다. 서너 마리는 낙지 탕탕이로 , 나머지 대여섯 마리는  나박나박 무를 썰어 넣고 다시마와 함께 육수를 내어 끓이다가  배와 양파를 채 쳐 넣고 마지막 쫑쫑 썬 청양고추를 더해 시원하고 칼칼하게 연포탕을 끓여 상에 올렸다. 그렇게 우리 집 밥상과 시부모님 밥상에 자주 올렸던 보양식 메뉴였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건 바다를 품고 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느 때처럼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가는 것은 아마도 보고 싶은 이들을 향한 추억일 것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바다의 향기를 한 모금 삼키고 싶어 진다. 연포탕의 추억이 쓸쓸한 그리움이 되었는지 요 며칠 동안 연포탕이 아른거린다.  날마다 전투를 하듯 집밥을 차리던 나의 삶이 담긴 시간들이 이제는 그리움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날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