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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Feb 15. 2023

엄마의 꿈 프로젝트 3

-비금찬이 만들어지기까지

73세인 엄마는 매일 아침이면 곱게 화장을 하신다. 머리도 붉은빛 염색을 하신다. 흰 머리카락이 나이 들어 보이신다고. 음식 만드는 사람이 우중충하니 꿰재재하게 보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맛이 없어 보이고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며 나이 먹은 사람이 음식 장사할 때는 몸 품새부터 갖추고 있어야 신뢰가 생긴다고 하신다. 몸이 아파 병원에 환자복을 입었던 날을 제외하고는,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매일 그렇게 화장을 하셨다.


엄마의  1순위 판매 김치는 콩나물 잡채와 고구마순 김치이다. 계절 김치로 아버지가 농사지은 고구마 줄기를 걷어 오시면 엄마는 일일이 껍질을 벗겨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낸 후 엄마의 비법으로 담근 고구마순 김치는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귀한 김치가 되었다. 껍질을 벗긴 고구마순을 깨끗이 씻어 데쳐내고 여린 고구마 순의 미끄덩거림을 천일염으로 바락바락 비벼내신 뒤 두세 번 씻어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고구마순의 아삭함이 오래도록 살아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냥 엄마만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과정이다. 그래서 엄마의 고구마순 김치는 새콤하게 익어도 미끄덩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는 김치를 담그며 재료 본연의 성질을 잘 알아야 한다며 계절마다 담글 수 있는 김치 종류와 맛있는 식감을 위해 식재료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지도 꼼꼼히 알려주셨다.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지만 전혀 몰랐던 것처럼 우리 엄마 대단하다를 외쳐대며 “와~우리 엄마 강의 하셔도 되겠네~“로 추임새를 넣어 드렸다. 일찍부터 서울에서 나 함께 주문 예약제로 김치 장사했으면 대박 났을 거라는 말씀을 하실 때는 어쩌면 그 많은 일들을 해내왔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혼자여서  힘들었다는 속내를 비추신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엄마 김치는 찐팬 들이 많다. 수술하고 입맛 없으신 장모님에게 보내드렸는데 엄마 김치 덕분에 입맛을 찾았다며 감사 인사로 소고기를 사 오신 분도 계시고, 엄마 김치로 자식들한테 보내면서부터는 엄마 김치만 먹는다며 기력이 없는 당신의 일이 줄었다는 시골 할머니의 칭찬도 아낌없이 받는다.

배추김치, 고구마순 김치, 무섞박지, 파김치를 세트로 묶어 아예 명절 선물로 예약하신 고객들도 있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알아준다고 김치 준비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명절 음식의 반은 이미 끝나게 된다.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엄마와 자주 만나 해묵은 이야기도 나누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기억도 소환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늦게나마 감사한 시간들이다. 꿈을 이루었다는 마음에 긴장감이 풀리셨는지 지난해 엄마는 많이 아프셨다. 한해 한해 달라지시는 모습을 보이시는 엄마는 요즘도 김치를 담그실 때마다 비금찬의 이름을 넣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신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비금찬이 최고다란다~~ 내 딸이 최고다란다~"

이제는 그토록 바라던 자식들의 모습 보시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옆에 계셔 주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매일 “뭐 먹을까?”“뭘 해먹이지?” 늘 숙제처럼 아이들에게 만들어줄 메뉴를 찾아 헤맬 때마다 유레카처럼 구제해 준 음식은 언제나 추억이 깃든 할머니와 엄마의 손맛이었다. 같이 살아가며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일이었는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깨달아간다. 음식 맛은 손맛이라며 재료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사는 내내 자식들에게 부모님의 경험 보따리, 지혜 보따리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재산이 되었다. 이제는 엄마의 꿈 프로젝트 '비금찬'이 완성되었으니 부모님과 온 가족 봄날의 벚꽃 나들이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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