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Feb 26. 2023
채움 항아리에 담긴 얼큰한 위로
-추억 한 끼 칼칼한 고추장찌개
가난한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주고 무기력한 나를 일으켜 주는 건 언제나 좋은 언어와 소박한 음식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음식과 대화의 시간들은 흩어져 있는 외로움들을 쓸어내기에 충분하고 가난해져 있던 위로의 채움 항아리에 풍요로움을 담아내는 시간이 된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해소해 주는 음식, 그럴 때마다 찾는 나의 소울푸드는 얼큰하게 끓여낸 숙자 씨의 고추장찌개이다. 묵직한 국물맛을 진하게 잡아주는 지방 섞인 돼지고기 좀 넣고 여름 한낮의 더위를 가득 머금은 포근포근한 감자 서너 개 큼직하게 썰어 준비한다. 연필 깎듯이 무심한 듯 툭툭 썰어낸 애호박과 아버지의 손길로 수확한 햇양파를 깍둑썰기로 넣어 엄마표 고추장 두세 스푼 넣고 바글바글 끓여내면 다른 밥반찬이 하나도 필요 없었다. 때로는 느타리버섯을 잔뜩 넣기도 하고 때로는 차돌박이를 넣기도 한다. 마지막 간을 맞출 때는 새우젓 한 스푼 정도. 국물에 빠진 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룰을 배반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음식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때그때 누구와 함께 하는지에 따라 입맛대로 만들어지는 엄마의 고추장찌개의 팁 한 스푼은 대파를 구워서 넣는다. 불맛이 일품이다. 숙자 씨는 늘 대파를 구워서 넣었는데 다른 집들의 고추장찌개도 당연히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야 모든 집들의 음식이 같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시어머님이 끓여주시던 고추장찌개는 가시 발라낸 굵은 멸치를 칼등으로 자근자근 찧어서 다시마와 함께 쌀뜨물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조금 넣어 칼칼함과 동시에 묵직함을 더했다. 마음이 산란하고 그리움에 갈증이 올라올 때 숙자 씨의 고추장찌개를 끓이곤 한다. 대파의 향도 좋지만 구워서 넣을 때 불맛과 단맛이 더해져 끓여진 고추장찌개는 된장 술밥처럼 밥 반공기 넣고 걸쭉하게 안주인 듯 밥처럼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무언지 모를 차오름이 가득해진다.
나를 위해 마음을 내어 음식을 만드는 시간은
특별하지 않은 늘 소박한 음식이지만 얼큰한 위로가 채워지는 나의 치유의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