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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Feb 24. 2023

첫번째 스무 살의 기억

-추억 한 끼 아이보리 막걸리 청춘

 책을 쓴다는 것은 나에겐 큰 도전이다. 마침, 브런치에서 구독 중이던 편성준 작가님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첫 번째 강의가 끝나갈 무렵 실습으로 10분간 ‘나의 사랑스러운 스무 살‘에 대한 산문 쓰기의 시간을 가졌다. 시작하자마자 다른 동기생들의 사각사각 볼펜들의 움직이는 소리와 노트북의 자판이 타닥타닥 쉽 없이 소리를 내고 있다. 

’아, 나는 스무 살에 무엇을 하고 지냈지? ‘

5분쯤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쥐어짜도 써야 할 글이 떠오르지 않는다. 

30년 하고도 5년이 흘렀으니 그럴 법도 하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었으니 20대 청준 시절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린 것 같이 머릿속이 하얗다. 남들보다 빠른 나이었으니 대학 2학년쯤이었을 텐데..  

   

가을볕 좋은 날이면 캠퍼스 작업실 앞 잔디밭은 우리 미술학과의 놀이터였다.

지금처럼 다양한 색깔과 맛의 종류가 없었던 막걸리는 술 중에서도 가장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몇 잔 마시다 보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차오르는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의 썰을 풀기에 제격인 소박하지만 다정한 친구였다. 


그날도 우리는 잔디밭에 앉아 붉은빛 노란 빛깔의 형형색색의 단풍 든 나무 아래에서 양은 술잔에 담긴 막걸리 한잔 받아 놓고 입담 좋은 선배들의 농담 따먹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어야 했다. 딱 먹기 좋을 만큼 따뜻하고 바삭했던 파전에는 선배들의 눈치가 보여 젓가락을 가져가지도 못한 채 시뻘건 김치보시기에만 젓가락을 올리고 내리고 반복했다. 그러다가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나면 맨 마지막 남은 동기들끼리 익은 김치 몇 가닥 넣고 삼양라면을 끓여 먹으며 시시껄렁했던 선배들의 뒷담화를 하곤 했다.


조소전공이었던 우리는 고된 흙 작업을 끝내고 나면 누구랄 것도 없이 힘들어서 한잔!을 외쳤고, 비가 오기라도 할라치면 날이 꾸물거린다는 핑계로 농땡이치고 한잔! 햇살 가득한 날이면 싱숭생숭하다며 청춘이 외롭다며 한잔! 그렇게 학교 앞 막걸리 선술집은 우리에게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곤 했다. 입과 혀에 착착 감기는 뜨끈한 홍합탕 한 그릇과 칼칼하게 청양고추 듬뿍 넣고 퍼질 대로 퍼지게 끓여진 꼬치 어묵탕을 앞에 두고 서로 눈치 보며 한잔이라도 더 먹으려는 의지를 불태우던 시절에 아이보리색 막걸리의 추억은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달짝지근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미소 짓게 한다.     


주말 시골집에 내려갈 때마다 엄마가 챙겨 주시던 밑반찬들과 가끔 특식으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홍어 무침을 가져오는 날이면 어느새 작업실은 진한 막걸리 냄새로 진동했다. 시시콜콜했지만 청준만이 느낄 수 있는 진한 동기들과의 우정을 나누기도 했던 시. 간간히 창문 밖으로 내리쬐던 지하 작업실의 햇살은 20대 청춘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쓰디쓴 자화상들에게 잠깐의 위안이 되어 주기도 했다. 

나의 아름다웠던 스무 살은 그렇게 담백한 막걸리처럼 달짝지근했다.


세 번째 스무 살을 앞두고 보니 오히려 그 시절이 순수했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잊고 살던 것들을 돌아보며 마음을 돌볼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해진다. 오늘은 담백한 막걸리 한 잔에 엄마의 홍어 무침 한 젓가락으로 뜨거웠던 스무 살 청춘으로 되돌아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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