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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Feb 28. 2023

세상에서 가장 순한 매력 덩어리

- 국민 반찬 콩나물의 변신

음식문화연구소 이미지 참고

콩에 햇빛을 주지 않고 적당한 어둠과 수분만 있으면 쑥쑥 잘 자라는 콩나물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착한 식재료이다.  황금빛 머리를 내밀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새하얀 기둥과 가느다란 뿌리가 늘어져야 콩나물로써 력을 발휘한다.


어릴 적 할머니는 방 한편에 검은 보자기를 씌운 콩나물시루를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 돌보셨다. 시루 밑에 깔린 물을 때맞춰 부어주며 다정하게 말도 건네셨다.


“ 무럭무럭 잘자라그라잉~~, 통통허게 살이 붙어야 시원헝께.
우리 서윤이 볼 딱지마냥 통통 허니 잘 자라야 혀~~”

한참을 놀이 삼아, 재미 삼아 키우시던 할머니의 콩나물시루의 진가는 할머니의 손맛으로 절정을 이룬다. 때로는 죽 같은 밥이 되기도 하고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을 간장조림으로  때로는 살캉살캉 씹히는 고소한 나물이 되기도 했다. 소금을 넣고 데쳐내야 콩나물의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며 옆에 지켜 서서 적당히 익혀질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할머니. 무엇보다 아버지가 과음을 하신 다음 날이면 할머니의 콩나물은 어김없이 밥상을 차지하는 힘을 발휘했다.


아버지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을 맺게 하는 힘! 콧물을 찔끔찔끔 흘리게 만드는 얼큰한 힘!

뜨끈하고 시원한 맛에 국물 한 방울까지 깨끗하게 비우게 되는 음식, 이 순하디 순한 콩나물이 가져다준 매력은 소박하지만 영양 가득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식재료이다.


우리 집에서 절대적인 식재료인 콩나물은 기름기를 쏙 빼고 푹 삶은 돼지고기 수육과 고소하게 구워진 3초 삼겹살을 먹을 때 꼭 빠지지 않는다. 대파 흰 부분만 어슷 썰고 부추와 데친 콩나물을 준비한다. 가끔 청양고추씨를 발라 채를 썰어 넣기도 하고 여린 미나리를 함께 넣어 버무리기도 한다. 적당히 매운 고춧가루, 사과식초, 설탕, 통깨, 소금을 조금 넣고 마지막에 참기름으로 향을 입히고는 새콤 달콤 초무침을 해서 야채에 올려 쌈으로 먹는다. 엄마가 해주시던 콩나물 잡채를 떠올려 만든 나만의 레시피이다. 새콤달콤함에 고기보다 콩나물을 더 얹어먹게 되어 과식을 하게 되는 단점도 있지만 야채를 멀리하는 아들을 위해 만들어낸 편식예방 메뉴이기도 하다.   


주방에서 고기를 굽는 큰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삼겹살은 콩나물이지~~~”를 외치며 기어이 콩나물 초무침을 만들게 했던 막내아들이 떠오른다. 군복무를 끝내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막내가 좋아하는 음식 궁합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해주셨던 것처럼 시간이 걸려도 직접 키워서 만들어 먹었던 콩나물 초무침.

오늘따라 서로 먹겠다고 시끌벅적 아옹다옹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많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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