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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Mar 10. 2023

시간과 기다림의 선물, 전통 '장'

-추억을 요리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지를 다녀왔다.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가  정원을 울린다. 따사로운 햇볕이 아담한 흙집을 감싸고, 이름 모를 새들이 나무사이를 포르르 날며 지저귄다. 평화로운 봄 같은 겨울의 낮을 만끽 하며 절친인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1박 2일의 여정을 보냈다.

주인장의 손길을 듬뿍 받아 반질반질 가지런히 항아리가 정돈되어 있는 시골집 안마당의 장독대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포갠 풍경들이다.


친정 엄마는 해마다 메주를 띄우고 장을 담그는 속도에 맞춰 살아간다.

"아버지가 애써서 농사지은 콩으로 메주 쑤어서 장을 담가 해마다 나눠주는 맛이 쏠쏠하다며 고단함도 잊는다"라고 말하는 엄마의 부엌에는 늘 아버지를 위한 육회 한 접시를 만들 재료가 놓여있었다. 늘 아버지에게 마음의 빚쟁이가 되어간다며 콩 심고 흙을 일구시는 농사꾼 아버지를 안쓰러워하신다. 부부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 이미 내 편인 것이다.


결혼해서 시어머님이 맛 보여주신 집장이 너무 맛나서 비법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입덧을 할 때였는데, 종갓집 외 며느리셨던 시어머님은 가을에 수확한 무와 노각을 염장해두었다가 나박나박 얇고 작게 썰어 준비하시고 고춧잎과 찹쌀죽, 메줏가루. 고춧가루, 엿기름을 섞은 뒤 삭혀서 저온 숙성한 발효 장을 만들어 주셨다. 뜨거운 쌀밥에 집장 한 스푼 얹고 참기름 휘리릭 한바퀴  두르고 쓱싹쓱싹 비벼 먹다 보면 입덧으로 고생하던 나도  밥 두 공기는 거뜬하게 해치웠었다.


자연의 시간과 기다림의 정성을 보태 만들어진 우리의 '장' 문화는 어쩌면 엄마의 일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의 섭리가 필요하듯 평생 함께 할 인연을 만나 결실인 자식을 품기까지의 과정이 그렇다.  뱃속 새 생명의 귀한 열 달의 시간 동안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다스려야 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아름다운 태동을 느끼며  세상에서 제일 경이롭지만 온몸의 세포가 꽃망울을 터트리듯 출산의 고통을 치러 내고 나면, 밤 잠을 설쳐가며 어르고 달래며 평생의 보물을 다듬고 세심하게 가꾸어 가야만 한다.

 '장'도 마찬가지이다. 적당한 햇살과 바람, 좋은 공기와 재료들이 만나 맛이 익어가도록 세심히 보살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집집마다 오묘하게 다른 '장'맛은 우리의 밥상에 자연과 시간이 주는 선물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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