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김치찌개는 왜 맛있을까?>

ㅡ숙자 씨의 부엌


음식 하나로 기쁨을 나누고 음식 하나로 누군가를 떠올리며 때로는 음식 하나로 목이 메는 눈물을 만나기도 한다. 어쩌면 허기진다는 뜻은 단순히 배고픔을 잊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고 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내내 깜지에 열심히 채워 넣으며 외워댔던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은 기억나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눈 비비고 있을 때, 부엌에서 들리는 정감 있는 도마소리와 보글보글 끓고 있던 엄마의 김치찌개 냄새는 위로가 필요할 때, 불현듯 따스한 기억으로 소환된다.


곤로 위에서 양은 냄비 모자를 들썩이며 붉은 용암을 토해내듯 사방에 국물이 튀고 있던 김치찌개, 은근한 온도의 연탄불은 솥 밥의 뜸을 들이며 밤사이 허기진 내 뱃속에 쓰나미를 몰고 오곤 했다. 엄마는 외갓집에서 보내준 곱창 김을 식구 수대로 꺼내어 몽글몽글 꽃 피우는 연탄불 위에 이리 휙 저리 휙 무사처럼 손끝 몇 번 흘리고는 한 사람에 한 장, 보급하듯 나눠주셨다. 돌이켜보니 전날 밤, 집안에 아빠에게 술 냄새가 진동했던 날이면 엄마는 다음날 김치찌개를 밥상에 올리셨다. 아마도 술 해장국으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얼큰한 국물을 준비하셨던 것 같다. 멸치 육수에 시큼한 김치와 달작지근한 맛의 양파를 굵게 썰어 넣고 듬성듬성 썰어 넣은 두부를 넣어 끓인 김치찌개는 아버지를 향한 엄마만의 애정 표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가끔씩 이름모를 허기가 느껴질때가 있었다. 그럴때마다 냉장고 깊숙히 자리 잡고 있던 새콤하게 익은 엄마표 김장 김치를 꺼내 멸치 대신 찌개용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엄마가 끓여 주시던 손맛을 떠올리며 냄비 한 가득 끓이곤 했다. 위장에 덧 씌워질 눅진한 돼지고기의 기름이 어쩐지 나의 슬픔을, 나의 힘겨움을 감싸 안아 줄것만 같았기 때문이. 그렇게 끓여 놓은 김치찌개는 몇 날 며칠 엄마 밥이 그리워 허기진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곤 했다. 한 입, 두 입 먹을때마다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은 어느샌가 나의 심장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생채기들을 하나, 둘 뽑아내 주었다.


세상의 모든 음식에는 그 음식과 관련된 나름의 추억의 맛을 기억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힘들고 괴로운 현실에서 정서적으로 메말라 갈 때, 누군가에게 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실망감,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온 마음이 탈진 상태에 이르면, 누가 옆에 있어 주기를 원하지만 언제나 내 편인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은 정말 어렵기만 하다. 그럴 때 우리는 먹을 것을 찾는다. 허기진 배를 채우듯 영혼의 울림이 있는 한 끼를 찾게 된다.


인생의 후반전이 되어서도 나는 화나고, 힘들고, 괴롭고, 속상하고, 마음이 헛헛할 때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찾아 먹고 나눠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그러다 마음이 풀어지면 마음 가득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한 시절을 건너게 해 준 엄마표 김치찌개. 상처 난 마음에 반창고를 붙이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엄마의 김치찌개는 매일 먹어도 왜 질리지 않는걸까, 맛이 아닌 엄마 사랑을 먹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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