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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Feb 11. 2023

깊은 잠이 목마를 때

친구가 그리는 추억 한 끼, 쌈밥과 미역국

거의 매일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가 있다. 퇴근길 잠깐씩 서로의 안부를 물어봐주며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보면 우울한 감정의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편안해짐을 느낀다.

불편하거나 미안하거나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있다는 건 살면서 보험 같은 울타리같이 든든하다.


요즘 부쩍 너무 많이 주어진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의 오늘만은 저녁밥 간단히 먹고 꿈도 없이 한 번도 깨지 않고 곤하게 자보고 싶다는 의지 같은 다짐을 듣는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작은 것에 불과한데ᆢ 편한 삶을 가지는 데에는  행운이 따라야 하는 걸까 싶어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일에 지칠 때면 잠시 눈이라도 붙일 수 있는 단 몇 분의 시간의 여유, 밥 한 끼 먹을 때라도 업무 전화벨이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한 시간만이라도의 여유, 퇴근 후 보고 싶은 친구들과 옛날이야기로 수다 떨며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늘 작은 평안한 일상을 만들어지길 바라지만 사는 게 참 녹록지 않음을 얘기하며 서로 토닥이는 마음만 보내게 된다.


"친구야~ 너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힘이 나? 너에게 보양식 같은, 먹고 나면 괜히 기분도 풀어지고 한 끼 잘 먹었다고 느껴지는 음식이 뭐야?"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참을 생각하던 친구는 쌈밥과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이라며 친구는 쌈 한 입과 어머님의 미역국을 입으로 설명하고 나는 친구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맛있는 추억 한 끼를 맛있게 들었다.


"옛날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쌈밥이 좋더라고ᆢ푸릇푸릇 싱싱한 상추에 쑥갓이랑 깻잎이랑 제철 쌈채소에 고기 한 점 올리고, 하얀 쌀 밥 한 수저 올려서 입 안 가득 넣고 거기에 때에 따라 반주도 한잔 걸치고 나면 노곤함이 풀리더라. 거기에 된장찌개든지 국물 한 가지 시원하게 끓여서 김치 한 보시기만 있으면 거하지 않아도 먹다 보면 힐링이 되더라고."


아마도 친구는 맛을 표현한다기보다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쌈밥밥상'을 앞에 두고 아들이 보냈을 하루의 고단함에 안쓰러움 한 스푼, 언젠가는 잘되겠지 하는 응원 한 스푼, 따뜻한 포용과 사랑 한 스푼으로 채워주셨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기 한 점도 없는데 보드랍게 끓인 우리 엄마 미역국은 진짜 맛있었는데ᆢ 미역 불려서 집간장하고 참기름, 마늘 다진 것 넣고 달달 볶다가 푹 끓이기만 했는데도 그냥 맛있어. 그런데 지금은 그 맛이 안나. 나이 드시니까 입맛도 바뀌시는지ᆢ"


"우리 엄마가 손맛이 참 좋으셨었는데ᆢ세월 앞에 장사 없나 봐.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나 좋아한다고 쌈밥에 푹 끓인 미역국  끓여주시는데 예전맛이 아니야. 달고 짜고ᆢ"


친구의 어머님 얘기를 듣다가 친정 엄마가 문득 생각이 났다.

무뎌지는 칼날처럼 지나가는 시간들에 녹아 혀끝이 무뎌지시는 건 당연한데 비금찬 김치 공구할 때  맛이 왜 그렇게 매번 다르냐며 타박만 했던 못난 철부지 자식이 얼마나 서운하셨을까ᆢ


자식은 언제나 부모보다 늦게 철들 수밖에 없는 자리인가 보다. 부모님의 삶을 안쓰러워하는 만큼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말이라도 서운하지 않게, 안부라도 여쭙는 한 편의 여유를 가져야겠구나 다짐한다.


우리는 어째서 나 하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가 이리도 힘들까? 서로의 푸념 섞인 넋두리였지만 오늘은 제발 깨지 않고 잠이란 걸 깊게 자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지는 친구가 꿈속에서라도 혼자만의 시간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나이 드신 부모님께 나 살기 바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사랑과 고마움에 대해 표현해야 할 남은 시간에 지각하지 않도록 내일은 안부 전화 한 통 드리며 사랑한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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