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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Mar 16. 2023

당신 곁엔 언제나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보고 난 후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함께 병원에 가길 원한다는 말을 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앞섰어요.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는 것이 고작인 당신에게 "당신이 해준 요리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을 꺼냈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마도 당신에게는 내가 아픈 것보다 음식을 해야 한다는 숙제가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당신은 나를 위해 매일 내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생각나는 음식은 없는지 물어가며 어떻게든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게 해주고 싶어 했죠. 어쩌면 입으로 삼켰던 음식보다 당신의 정성 덕분에 내 영혼의 배부름을 느꼈고 당신의 사랑 덕분에 세상과의 이별이 무서웠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투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 어느 것도 입에 대지 못할 때 당신이 만들어준 음식을 만나는 시간은 내가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축복 같은 시간이었어요.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 낼 때마다 어떻게 만들었냐는 나의 질문에 당신은 늘 간단하지 않은 요리를 "아주 간단해"라고 말해 주었죠.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당신과 함께 헤쳐가면서 짧은 기쁨의 순간을 만날 때마다, 이 순간이 길게 늘여졌으면 좋겠다는 희망 고문을 하기도 했어요.      


뼈가 부서지는 통증과 온몸에 피가 바닥까지 말라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아픔은 매일 두려움의 연속이었어요. 그보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당신이 나를 위해 요리해 주던 당신의 뒷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거였어요. 한 숟가락이라도 입에 넣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이었죠. 당신은 아시나요? 당신을 위한 선물이 오히려 나를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을요. 매일 나의 안색을 살피는 당신에게 "정말 맛있다" 진심의 한마디를 해줄 수 있어서 기뻤고, 매일 우리의 식탁에서 슬픔을 감춘 채 우스개 소리를 늘어놓으며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려 애쓰는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죠. 그럴 때마다 이별을 만날 뻔했던 젊은 날에 당신을 놓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싶기도 했어요.

     

당신은 웃는 모습이 참 멋있어!

당신이 마지막까지 내 옆을 지켜준 ‘내 편’ 이어서 안심할 수 있었고 당신이 만들어준 음식 덕분에 짧은 기쁨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떠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웠어요.. 이다음에 우리가 다시 태어나면 내가 먼저 당신을 알아볼게요. 그리고 나는 남편이 되고 당신은 아내가 되어 기쁨 한 스푼, 사랑 두 스푼으로 채운 당신을 위한 밥상을 매일 준비할게요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향 좋은 드립 커피 한잔 내려줄게요.   

   

당신이 내 편이어서 고마웠습니다.

당신 덕분에 행복한 소풍이었습니다.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보고 난 후 매일 남편의 정성 가득한 밥상을 맞이하며 암 투병을 했던 아내라면  마음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나라면 어땠을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 한 켠이 내려앉는다. 마지막까지 의지했던 남편에게 보내는 마음을 떠나는  아내의 입장에서 편지로 리뷰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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