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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Mar 17. 2023

온 가족을 살리게 했던 밥벌이

-추억 한 끼  호박 식혜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밖에서 끼니를 대충 해결한다. 오랜만에 팔순이 넘으신 고모한테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내가 좋아하는 호박식혜를 만들고 계시다며 보내줄까? 하신다. 고모 소리를 들으니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익숙한 맛과 잊고 살았던 그리움까지 함께 찾아왔다.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먹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하시던 고모가 벌써 팔순이 되셨다니..


할머니의 손맛을 가장 많이 닮으신 고모는 목포에서 꽤나 잘 살았었다. 수협 경매사였던 고모부의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되었을때 어시장 내에서 이미 손맛 좋기로 유명했던 고모는 작지만 생선가게를 차리고 그 앞에서  매일 호박식혜와 식혜를 만들어 파셨다. 벌써 45년 전에 식혜를 만들어 파셨으니 고모는 고모부보다 장사수완이 훨씬 좋으셨던 것 같다. 달달하고 노란 고모의 호박식혜는 점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한번 먹으면 계속 찾게 되는 중독성 강한 호박식혜는 단골손님들까지 생겼다. 한 여름이면 얼음 동동 띄워 한잔씩 팔았고 행사가 있는 손님들은 큰 병을 가져와 고모의 호박 식혜를 사 가기도 했다.  내 기억에 큰 식당에 납품까지 했으니 고모의 식혜는 상품으로써도 충분히 남달랐다.


달달한 맛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식혜!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가마솥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던 호박식혜가 기억난다. 고모는 지금도 그때 먹었던 호박식혜 이야기를 종종 꺼내시곤 한다. 아무리 만들어도 할머니의 호박 식혜만큼은 못한 것 같다고 하시지만 고모의 호박식혜는 지금도 맛이 변하지 않고 최고다.


고모의 호박식혜는 유난히 노랗고 달콤하다. 지금도 고모는 1년에 한 번씩 보리순을 띄워 엿기름을 직접 만들고 계신다. 그렇게 만들어진 엿기름가루 400g, 물 3L, 쌀밥 1컵, 설탕 2컵정도, 소금 약간 준비한다. 엿기름가루와  물을 잘 섞은 뒤 한 시간가량 불려 두었다가 조물조물 주물러준 뒤 고운 체에 밭쳐 걸러낸다.  냄비에 옮겨 담고 끓기 시작하면 숟가락으로 속을 파내 준비했던 늙은 호박을 적당히 썰어 찜기에 으깨질만큼 40분 정도 쪄낸다. 쌀밥과 엿기름 물을  밥솥에 담아 보온모드로 6시간 정도 밥알이 떠오를 때까지 삭혀준다. 쪄 두었던 늙은 호박을 걸러두었던 엿기름 물과 함께 믹서로 갈고 설탕과 소금 한 꼬집을 넣고 15분 정도 끓여 준다.  마지막으로 차게 식힌 뒤 흐르는 물에 씻어 헹궈 놓았던 삭힌 밥알을 넣어주면 완성이다. 지금이야 믹서를 사용했지만 그 시절 고모는 늙은 호박을 삶아 그 많은 양을 체에 내려 엿기름을 진하게 거른 물과 섞어 삭힌 뒤 끓여 내셨다. 방학 때마다 고모네집에 가 있을 때면 욕탕에 큰 사각 얼음을 넣어두고 식혜통을 담가 보관했었다.  요즘도 고모는 저녁식사를 끝내고 옥상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별도 보고 식혜도 먹으며 깔깔대던 그 시절이 몸은 힘들었지만 자식들이 잘 돼 가는 맛에 살만했었다는 얘기를 하시곤 한다.


엄마였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만 줄줄이 3명, 공부 하는 사촌 동생들을 건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 당당함이 가족들을 건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말엔 오랜만에 고모 얼굴 뵙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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