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Mar 17. 2023

배려의 음식

추억 한 끼 양념 꽃게장



바깥일을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던 맏딸인 나는 철이 일찍 들었다. 때로는 동생들의 잘못까지도 내가 잘 돌보지 못하고 맏이로써 모범을 보이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내 탓이 아닌데도 엄마에게 꾸중까지 들을 때면 너무도 속상했다.

그래서일까?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하고 참아 내는 게 몸에 배어 있어서인지 나의 본능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살지 못했다. 세월이 쌓이다 보니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덜 양보하고 덜 배려하며 YES가 아닌 NO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노력중이다.


어제는 천근만근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겨우 씻고 누웠는데 하루종일 한 끼도 못 먹었음이 떠올랐다.  

친정에서 엄마와 보냈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시장에서 일하느라 피곤한 엄마와 양념 꽃게장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였었다. 엄마는 "요즘은 밤에 잠이 안 올 때마다 네 생각을 헌다. 옛날에 니가 하고 싶은데로 원하는 서울로 올라가서 공부하라고 할걸 그랬나 후회도 되고. 그럼 니가 이 고생을 안 해도 될것인디, 미안허다잉~"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리 아팠는지ᆢ 그때는 동생들이 줄줄이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만 어릴 적 철부지였던 마음에 원망스러움이 많았었다. 엄마에게 "그때는 속상했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으면 아마도 지금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이렇게 엄마랑 아부지 얼굴 많이 보라고 그랬을거야~ 괜찮아요"라고 말했었다.


간장게장을 담그면 맏이인 나와 아부지에게 노오란 알이 가득 담긴 게딱지를 건네셨고, 큰 손녀딸이 매콤하게 무쳐낸 외할머니 꽃게장이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양념 꽃게장을 만들어 보내 주시던 엄마.

먹기 편하게 살만 발라내서 양념해서 보내 주며 "니 성격에 애들 밥상머리에 앉아서 일일이 살 발라 줄 것 뻔하니 내가 대신 발랐다. 그런 시간이라도 애껴서 쉬어라잉~" 하시던 엄마셨다.

내 숟가락 위에 꽃게살을 발라 올려주시던 엄마의 마디 굵은 손가락마다 애잔함이 묻어있던 손길로 손주들을 위해 또 마음을 내셨을 것이다. 당신은 딱딱한 게 껍질만 드시며 쉰이 넘은 딸내미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봐도 좋으시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늘 염원한다. 오늘도 친정 엄마의 배려 깊은 순살 양념게장으로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작가의 이전글 온 가족을 살리게 했던 밥벌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