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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겪고 난 후 매콤한 위로

추억 한 끼 오징어 볶음

오늘은 무얼 먹을까? 매일 하는 고민이지만 매번 답을 찾지 못한다. 언젠가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오징어 몇 마리가 냉동실에 있었다. 서둘러 매콤한 고추장과 청양 고춧가루에 맛간장, 마늘과 설탕 한 스푼 넣고 후다닥 양념을 넣고 프라이팬에 볶다가 냉장고에서 뒹굴고 있던 야채들을 썰어 넣고 볶아냈다. 밥통을 열어보니 마침 밥이 딱 맞게 되어 있었다. 식탁 위에 반찬 몇 개를 꺼내놓고 숟가락을 들었다. 하얀 쌀밥 위로 빨간 양념이 먹음직스럽게 흘러내렸다. 어느새 입가에 침이 고였다. 수저를 들어 크게 한 입 먹었다. 매콤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입안 전체를 맴돌았다. 상추쌈 위에 흰쌀밥 올리고 알맞게 익은 오징어 올려 한입 크게 먹으니 입안 가득 퍼지는 매콤함! 행복하다!!

눈물 나게 맛있다. 젓가락으로 통통한 다리살을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탓에 아쉬움이 가득 남았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매운 오징어 볶음을 먹는데 문득 대학 때 만났던 첫사랑이 떠올랐다. 불꽃같지는 않았지만 늘 한결같이 내 마음을 챙겨주었던 그였다. 친척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산다며 내 입맛에 맞는 음식들을 사주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나를 챙겨주었던 남자친구의 최애음식이 오징어 볶음이었다.


문득 슬퍼졌다. 이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픈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는데 나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 같아 씁쓸하다.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고 난 후 오랜만에 시골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음식을 준비하며 울고 있는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 실컷 울어라. 눈물이 안 날 때까지 울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이별을 겪고 난 후 먹는 청양고추와 고춧가루 팍팍 넣은 엄마의 오징어볶음은 입 안에 불이 날 만큼 매웠다. 아마도 마음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딸을 위한 레시피를 풀어내셨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도 행복 총량의 법칙처럼 가끔씩 슬픔이나 고통이 찾아올 때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삶의 중간쯤 어디메에서 잘 살고 있을 그를 떠올리며 매콤한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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