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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Mar 20. 2023

아버지의 속달임 음식

추억 한 끼 봄쑥 해장국


어릴 적 기억 속에 내가 살았던 시장 골목 안 오래된 식당들 사이로 간판 없이 운영되는 동네 탁주집이 있었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네모 반듯한 하얀 타일로 아일랜드 식탁처럼 만들어져 있고 일본식 선술집처럼 바 좌석이 있는 꽤 정갈한 식당이었다. 그 가운데에 연탄불 화구 두 개를 앉히고 커다란 가마솥과 순대가 담긴 찜기솥을 올려 그때그때 한잔 술에 어울릴만하게 안주거리를 내주셨다. 한 솥에서는 구수한 된장으로 맛을 내고 쑥과 얼갈이를 삶아 넣은 해장국을 끓여내고 있었다. 심야식당처럼 한잔 술을 마시는 동안 주인아주머니는 말동무도 해주시고 가끔은 자신의 신세한탄도 하면서 그렇게 시장 한 구석에서 동네 사랑방이 되었던 정겨운 식당이었다. 가끔 엄마 심부름으로 아침 일찍 아버지 해장국을 사러 들어가면 아주머니는 나에게 순대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어 주시기도 하셨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우물우물 씹히는 순대맛은 먹고 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았다. 아버지의 해장국 심부름이 그리 싫지 않았던 것은 아주머니가 입에 넣어 주셨던 따뜻한 순대 한 조각 덕분이지 않았을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데, 여기에 따뜻한 정까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도 친정집에 가면 아버지와 함께 쑥 해장국을 먹으러 가곤 한다. 어릴 때 먹었던 순대와 해장국의 맛은 아니지만 잠시 추억의 한 끼를 맛보며 기억 저편 아련한 맛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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