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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Mar 22. 2023

여섯 살 오줌싸개 탈출기

추억 한 끼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할머니의 곶감

찬 서리 맞은 바람에 붉게 익은 감 껍질을 깎고 시득시득하게 말린 곶감은,

여러 번의 손길을 거치며 오랜 시간과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야 비로소 그 쫀득한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

말리는 중간중간 모양도 잡아주어야 하는 접는 과정이 필요하다. 요즘이야 집안에 냉장고가 있어 보관이 편리하지만 오래전에 곶감은 시간과 손길이 얼마큼 들였느냐에 따라 달콤한 눈꽃 같은 하얀 분이 많이 일어 나도록 잘 말려야했다. 그래야만  오래보관하고 제대로 된 맛과 은은한 향까지 더해진 빛깔 좋은 곶감이 된다.

과거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 이야기를 수 도 없이 해주시던 할머니 생각이 난다. 어릴 때 시골집에 가면 할머니는 지금의 다용도실 역할을 하던 광에서 꿈 쳐두었던 곶감을 꺼내 주셨다. 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쓸 때마다 할머니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을 어린 내 입에 넣어주셨다. 여섯 살 때까지도 시골집만 가면 밤에 무서워 화장실에 못 가서 이불에 종종 실수를 했다. 그런 나를 위해 토방에 요강을 두셨던 할머니는 용기 있게 혼자 토방에 쉬를 보고 오면 잠결에도 잊지 않고 내 손에 곶감을 쥐어주시곤 했다.

아침에 이부자리 사이에 굴러다니는 축축해진 곶감을 챙기시던 할머니는


"어구구~우리 강아지 밤에 혼자서 쉬도 잘했네"


요강을 탈출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의 오줌싸개 별명은 여섯 살 이후로 사라졌다. 시골살이  여섯살 꼬맹이에게는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과 열매 구경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가을이면  시골 할머니댁에서 감을 따던 날이 떠오른다. 햇살 좋은 아침부터 감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란 장대 끝에 달린 긴 막대로 가지를 힘껏 흔들어댔다. 높은 곳에 달려 있는 홍시는 까치밥이라고 해서 따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렇게 우리 손에 들어온 단감이며 홍시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가끔 그때 먹었던 간식들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할머니에게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건강하시라는 안부를 전한다.


며칠 전 친한 언니가 지난겨울 내내 베란다에서 곶감을 말렸다며 열 알을 지퍼백에 넣어 챙겨주었다.

언니 성품만큼이나 정성스럽고 단정한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반건시였다.

퇴근한 형부와 도란도란 앉아서  껍질을 깎아 다이소에서 사 온 곶감건조대에 말렸다고 했다. 그 뒤로도 언니는 곶감 말리기에 쏠쏠한 재미를 느꼈는지 대 여섯 박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언니의 정성 가득한 수제 곶감을 탐내며 엄마 김치로 보답했다.


수분이 많아 썩기 쉬운 감을 오래 두고 기 위해 껍질을 깎고 볕과 바람에 말리면 과일이 주는 단맛이 더 좋아진다는 걸 알아낸 선조들의 지혜가 새삼 경이롭다. 명절이나 제사상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곶감이 이제는 사계절 마트 냉동고에 가면 언제든지 사 먹을 수가 있게 되었으니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세상이 참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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