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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폿집에서 첫 술을 배우다

소소한 추억 아버지의 막걸리를 탐하다.

아직도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생생한 기억들이 많다. 열 살 때까지 우리 집은 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했었다. 덕분에 남들보다 맛있는 음식을 참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갓 쪄낸 인절미 향기에 정신을 못 차렸던 어린 시절부터 술빵 냄새 가득한 막걸리 대폿집까지. 지금은 샘골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오래전의 정읍 구시장에는 구석구석 우리 가족의 추억이 서려있다.


내가 들어가고도 남을 대형 항아리 가득 막걸리를 채워 팔던 대폿집은 동네 아저씨들의 참새 방앗간이었다. 반주를 즐겨 드시던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도맡았던 나는 노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며 심부름을 다녔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가 움직이면서 출렁일 때 흘리지 않으려고 한 모금, 두 세 모금정도 홀짝홀짝 목을 축여가며 마시는 막걸리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임무완수를 끝마치고 나면 나는 아버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따르면서 줄여진 술의 양을 알아채셨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막걸리의 배달사고를 씨익 웃고는 넘겨주셨다.


가끔 비 오는 날, 대폿집 아주머니가 술지게미로 만든 술빵이나 꽈배기가 안주거리로 나올 때는 아버지는 일부러 나를 부르시곤 했다. 술빵 먹는 나를 보시며 잔에 담긴 막걸리 한 모금을 은근슬쩍 건네기도 하셨다.

"술은 부모한테 배워야 한다"고 하시며 아버지의 애정 서비스가 담긴 막걸리를 건네주신 것이다. 한잔이 두 잔이 되고 "우리 서윤이 아부지 닮아서 막걸리 잘 마시네. 얼마큼 마시나 볼까?" 하시며 자꾸 술잔을 건네셨다. 비 온 뒤 끝에 촉촉해진 시장길을 아버지와 열 살 배기였던 나는 취기 오른 발걸음에 갈지자로 휘청거렸다. 아버지에게 제대로 배운 첫 술이었다. 내 기억속에 먹었던 첫 막걸리 추억은 달콤 쌉싸름했다.


그 뒤로 술맛을 알아버린 나는 친구들과 동네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고 들어와 막걸리 주전자가 보일 때면 가끔 뚜껑 위에 엄마 몰래 따라 마시던 막걸리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세월 따라 삼천리라고 45년 전에 대폿집을 떠올리니 열 살 때 아버지와 함께 했던 나를 다시 만난 기분이랄까. 옛날엔 그저 달달하기만 했던 막걸리가 이제는 조금씩 씁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씁쓸한 기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대포집 풍경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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