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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대신 당근 꽃이라도

아들을 위한 밥상

밤늦게 퇴근한 아들이 체한 것 같다며 저녁밥도 건너뛰었다. 아들에게 죽이라도 쑬까 물어보니 싫단다. "그냥 잘게요"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서면 쉬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또 주저리주저리 과잉 걱정을 할 것 같아 한 숨 참았다.

남들은 우리 집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말만 하면 뚝딱뚝딱 음식 잘하는 엄마가 있어 좋겠다" 며 부러워들 하지만 정작 큰 아들은 편식이 심하다. 그것도 매우. 비린 것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나마 김치 종류는 가리지 않고 먹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을 만큼.


밤새 괜찮은지 걱정이 되어 잠들어 있는 아들방을 빼꼼히 열어보니 피곤했던지 코까지 골며 잘 잔다. 그럼 됐다. 속이 부대끼지는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일찍 출근한다는 아들을 위해 스크램블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 유부초밥이 먹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물론 제육볶음과 소불고기를 얹은 유부초밥이었지만.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냉장고에 식재료들이 그리 많지 않기도 했지만 전날 체한 속을 다시 고기로 부담 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죽은 싫다고 하니 보드라운 스크램블이라도 올려주고 싶었다. 마침 친정 엄마표 새콤하게 익은 알타리 김치가 있어 깍두기볶음밥을 볶아서 매실 엑기스와 우메보시를 다져 넣어 사각유부에 밥을 채웠다. 체기를 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뭔가 허전해서 당근 꽃이라도 올릴까 싶어 작은 벚꽃 틀을 찾는데 어디에 틀어 박혀있는지 찾을수가 없다. 씻고 나온 아들이 식탁에 앉기 전에 만들고 싶어 급한 마음에 크기는 내 맘에 안들었지만 다른 꽃모양 틀로 후다닥 대왕 벚꽃을 만들어 올렸다. 아들 왈 "밖에 나가면 천지가 벚꽃인데 굳이 ᆢ"란다. 그 말인즉슨 굳이 자기가 싫어하는 당근을 왜 올렸을까?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엄마의 잔소리가 예상된 것이다.


미운 놈ᆢ

엄마의 소녀 감성을 무너뜨리다니.. 밤새 걱정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아들아,

이다음에 너 같은 아들을 낳으렴

독설을 퍼부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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