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검정콩조림
추억에 추억을 부르는 한
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Apr 2. 2023
반찬통 뚜껑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윤기 자르르한 검정 콩자반 위로 검은깨가 촘촘히 뿌려져 있었다. 달큼하면서 짭조름한 냄새까지 더해지니 침이 절로 고였다. 젓가락으로 집어 한입 맛보았다. 꼬들꼬들한 식감 사이로 고소함이 퍼졌다. 짭조름한 간장맛 뒤에 느껴지는 달짝지근한 맛, 씹을수록 입 안 전체에 감칠맛이 맴돌았다.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해치웠다. 오랜만에 친정 엄마표 콩조림을 먹어 보게 되었다. 김치와 함께 어릴 때 먹었던 엄마의 콩자반이 먹고 싶다는 나의 전화 한 통에 엄마는 또 바리바리 싸 보내셨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 같은 반찬을 싸준다고 투덜대면 엄마는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다며 고심하셨다.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 엄마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밥 냄새와 함께 달짝지근한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풍겨왔다. 언제 불리셨는지 검정콩조림과 계란물에 김을 한 장 올려 만든 김계란말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계란말이도 매번 다르게 만들어 주시던 엄마셨다.
어릴때 먹었던 엄마표 콩조림은 유독 부드러웠다. 검정콩을 불릴 때부터 소금 한, 두 스푼을 넣으셨다. 소금이 들어가야 콩의 고소함이 배가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함께 불린 콩과 불린 물을 한 컵 정도 넣고 넉넉히 물을 잡아 삶았다. 부드러워질 때까지 중불에서 오래 삶고 난 뒤에서야 간장과 설탕, 물엿을 넣고 조리셨다. 엄마의 팁은 다시마를 한입 크기로 잘라 거의 콩이 익을 무렵 넣어서 다시마와 검정콩을 함께 조려 주시는 거였다. 마지막에 통깨를 넣고 참기름 휘리릭 돌려 고소하게 만들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영양 가득한 반찬이 탄생했었다.
점심시간에 스테인레스 도시락 반찬통 뚜껑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엄마의 반찬은 늘 내 몫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내 옆에 빙 둘러 모여 앉았다. 엄마의 손맛 덕분에 늘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샀다. 친구들의 젓가락질로 순식간에 몇알 안되는 콩조림이 담긴 나의 도시락통이 비워졌다.
도시락 반찬통 뚜껑을 열면 언제나 달짜작지근 고소한 냄새가 났던 유년시절의 추억 한 끼. 어릴 적엔 먹기 싫어 투정 부리기 일쑤였던 콩조림은 이제 우리 집 냉장고에 빠지지 않고 채워지는 반찬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검정 콩자반을 좋아한다. 특히 겨울날 먹는 따뜻한 밥 위에 올려먹는 게 제일 맛있다. 종알종알 대며 우리 아이들과 수다 떨며 하얀 쌀밥 위에 까만 콩자반 몇 알이면 어느새 안 먹겠다며 투정 부리던 콩조림 한 접시가 다 비워지곤 했다.
이제 결혼을 할 나이들이 되어버린 우리 아이들도 어느 날 문득 내가 만들어준 콩조림 반찬이 그립다고 할까 궁금해진다. 어릴 적 먹었던 추억의 맛으로 “엄마! 그때 그거 있잖아~그거 먹고 싶어”라고 기억해 줄까?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많이 그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