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선물이자 인생을 알게 해주는 쓴맛처럼
계절에 맞는 옷처럼 우리 몸의 오장육부도 계절에 맞는 옷을 입혀 주어야 한다. 봄에는 봄에 맞는 음식, 즉 열을 발산하고 열을 내려주며 위장이 잘 소통되는 음식이어야 하므로 봄에 나는 제철 음식 중 쓴맛, 신맛을 찾아 먹어주어야 한다.
겨울 음식이 몸을 따뜻하게 하며 기름지게 보양하는 음식이라면 봄 음식은 맛을 담백하게 하는 음식으로 보양해 주고 간의 기운을 도와 장과 위를 잘 소통시켜 주면 좋다. 겨우내 정체되어 있던 간의 기운을 잘 소통시키기 위해 장과 위를 잘 통하게 하는 음식을 먹어주어야 하는데 봄에 초록 나물이 유독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음식의 맛은 우리 오장육부와 관련이 있는데 봄의 나른함을 견디게 해주는 간과 위장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이 주는 선물인 제철 식재료를 많이 먹어주는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계절 따라 천지에 깔린 자연의 식재료를 찾아가다 보면 우리 몸의 오장육부에 어떤 맛을 찾아 채워줘야 하고 어떤 영양소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고은정 선생님의 봄나물 밥상에서 만난 들나물 샐러드와 갖가지 나물들.
술맛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누룩소금과 들기름만으로 무친 야생 두릅, 씁쓸한 오가피순은 고추장 무침으로, 간장과 들기름만으로 무쳐낸 부드러운 엄나무 순과 된장으로 무친 눈개승마, 그리고 막장으로 무친 취나물까지 각각 나물의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려 만들어 주셨던 모둠 나물이었다. 아직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큰 나무 밑 아래 그늘에서 빨리 꽃을 피우고 난 자리에 자리 잡은 어린 초록순들을 모아 만든 들나물 샐러드는 시골에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름도 생소한 돌담초 꽃의 달큼함이 아직 입안에 기억해 낸다. 여린 박하순의 향기는 입과 코 끝 언저리에 남아 상쾌함마저 감돈다. 요즘 제철인 문어와 쑥애탕의 육수를 낸 양지머리 수육과 함께 곁들임으로 내어주신 음식들은 술이 술을 부르는 조합이었다.
봄의 계절을 담은 술안주로는 가죽순 전 부침이 최고였다. 고기맛이 나고 맛과 향이 독특했다. 씁쓸한 맛이 단맛이 나는 전통주와 잘 맞았다. 식을수록 향이 더 진해져서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 가죽순 전을 부쳐서 막걸리와 한 잔이 생각나는 안주이다.
다음날 아침 밥상에서 만난 쑥애탕은 몸의 부족한 음의 기운을 보충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데 최고의 메뉴였다. 어느 도반이 쑥애탕을 먹고 난 후 '안개 낀 숲'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음식을 먹고 감탄을 표현하는 단어마저 아름다웠다.
갖가지 나물에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양념을 한 봄나물 식탁은 이 봄이 가기 전까지 우리 집 식탁을 점령할 것 같다. 한 해를 잘 보내라는 자연의 선물 같은 제철 식재료로 가득 채운 건강 밥상으로 우리의 오장육부에게 기운을 보충하는 날들을 보내고 싶어 진다.
어쩌면 맛있는 부엌과의 인연은 인생의 봄날을 위해 나른함과 무기력은 벗어 던지고 몸과 마음도 기운 쏀 언니 원더우먼이 되라는 특급 숙제를 받은 것 같다. 오장육부에 꼭 채워야 하는 쓴맛처럼 음식의 맛을 통해 삶의 쓴맛도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