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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와 부패는 한 끗 차이이다.

술이 익어가는 것처럼 인생도 익어가는 시간이다.

1박 2일 지리산 맛있는 부엌에서 술술 특강 열두 달의 술 빚기 수업을 다녀오면서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10년을 한결같이 우리의 좋은 술을 어떻게 하면 널리 널리 알릴까 고민하고 계시는 장미란 선생님과 함께 4가지의 전통 누룩을 빚었고, 고은정 선생님과 스텝 선생님들께서 우리 술과 맞는 봄의 안주를 만들어 주셔서 제철 보약 열 첩 정도 먹은 것처럼 기운을 받고 돌아왔다. 함께 배웠던 도반들의 수업 시작 전과 끝나고 난 후의 눈빛들이 사뭇 다르다. 그동안 전통 누룩 빚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는데 염원하면 이루어지듯 훌륭한 선생님과 좋은 도반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이제야 만나고 나니 다 때가 있는 거구나 싶다.


발효하는 시간 동안 같은 재료여도 계속 살피고 공을 들이지 않으면 부패가 되어 버린다.

산고의 고통을 겪어야만 새 생명을 품에 안을 수 있는 것처럼 시간과 습도의 환경을 맞추어가며 사랑을 품고 기다려야만 한다. 인간의 장점이 발효가 돼서 제3의 물질이 되려면... 즉 전문성이 갖추어지려면 꾸준하게 기다리는 인내심과 한 눈 팔지 않고 돌보는 정성의 마음이 필요하다.


3년 전부터 발효 공부를 해오고 있다. 처음에 배운 누룩은 황국으로 쌀 꽃을 피우고 발효하여 천연 발효잼을 만들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수없이 만들어 가며 레시피도 만들고 여러 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며 우리 전통 누룩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열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전통 누룩으로 나만의 술도 빚고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싶었다. 그중에 하나가 발효잼이었다.

만든 재료를 한꺼번에 다 버릴 때도 있었지만 실패해도 괜찮았다. 메뉴개발이란 것이 머릿속에 그려진 대로 맛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기에 쉽사리 실망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실패할 때마다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들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았다. 천연 발효잼을 연달아 만들어 보면서 순수 발효를 이용해 몸에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한동안 미친 듯이 발효에만 매달리기도 했었다.


언젠가는 진심이 통할 거야!

살아있는 발효의 꽃을 피우기까지의 시간에 진심으로 공들이고 그런 과정들을 기록하고 분석하며 기다림에 늘 말을 걸었왔던 것 같다. 실패해도 괜찮고 참패해도 괜찮고 연달아 패배해도 괜찮다고.

많은 식물이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보내야 다음 해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듯이 겨울보리가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는 것처럼 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삼고 늘 마음속 한 구석에 숙제처럼 안고 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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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말 중에 익어간다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조금씩 나의 인생이 익어가는 과정에서 만난 우리 전통 술을 만나게 된 의미를 찾아가 보는 기회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어 고맙고, 오랜 벗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열두 달 동안함께할 도반들과의 인연에 소중함을 느낀다. 누룩 발효는 어르고 달래며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를 닮았지만 그래도 사랑으로 감싸 안고 우리 아이들을 키웠듯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어쩌면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내 인생도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한 잔의 술처럼 익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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