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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May 01. 2023

음력 삼월 열이틀, 쉰다섯의 나이를 맞이하다.

미역국 대신 팥 찰밥으로 대신한 생일상

어젯밤, 친정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뭔 돈을 다 보냈냐? 얼굴이나 한 번 보여주지"


"아부지랑 엄마랑 저 만드시느라 애쓰셨으니께~~맛난거 사 드세요."


"요 며칠 온 삭신이 쑤시더니 그러고 보니 내일 아침 네 생일이네..

오메 깜박 잊어버렸다. 이 눔의 정신머리 보소."


"내 나이가 몇 갠데ᆢ몸은 괜찮으셔?"


"너 좋아하는 찰밥 좀 해서 보낼 것인디ᆢ. 이제는 자식 생일도 깜박깜박 허는 것이 나이 앞에 장사 없어야~~"


"내가 해서 먹을게요. 엄마랑 아부지랑 저녁에 나가셔서 맛있는 거 사 드세요. 요즘 도다리 맛있던데ᆢ"


그러고도 한참을 이것도 해서 보내야 허는데, 저것도 해서 보내야 허는데ᆢ나이 탓을 하며 자식의 생일을 까먹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한참 넋두리로 대신하신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우리  가족들 생일날 아침에는 미역국과 팥 찰밥을 꼭 해주셨다. 이유를 여쭤봤을 때 팥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한 해동안 액막이가 될 것 같다고ᆢ엄마만의 방식이라고 하시길래 나도 우리 아이들 생일 때에는 팥밥을 했었다.


"내일 아침 꼭 해 먹을게요."로 통화를 마무리하고 찹쌀을 꺼내 담가 냉장고에 넣었다.

귀로 엄마의 12첩 수라상을 받고, 아침부터 팥 찰밥을 했다. 순전히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ᆢ


다행히 찹쌀도  있고, 작년 가을 까놓은 알밤도 냉동실에 있고 좋아하는 팥도 삶아져 있어서 찰밥을 쪘다. 손은 왜 이리 큰지ᆢ쪄내고 보니 찜솥 가득이다. 사진 찍어서 엄마에게 톡을 보내니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아프지 마라. 내년에는 꼭 잊지 않으마" 하신다.


"저도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

전화를 끊고, 새우 몇 개 꺼내 미역을 찾는데,  미역이 똑 떨어지고 없다.

다행이다. 미역국을 먹지 않았으니 올해의 내 나이는 여전히 어제의 나이로 말할 수 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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