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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Jun 23. 2023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ㅡ묵은지 볶음

며칠 동안 젓가락처럼 늘어진 몸뚱이가 힘들어 잠시 쉬어 주었다. 갑자기 찾아든 고민거리!! 며칠간의 불면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새벽부터 몸을 움직여 냉장고 청소부터 시작했다.

동굴 속에 갇힌  생각들을 객관화시키고 멀찌감치 나를 앉혀놓고 들여다보기를 하기 위한 나만의 법이다. 새벽부터 냉장실과 냉동실을 정리하고 나니 오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제야 배가 고프다. 빡세게 몸을 움직이고 나니 깨끗해진 냉장고 속처럼 내 머릿속도 정리가 되었다. 감정적이지 않고 앞으로 해결할 방향만 생각하자고 정리하고 나니 가슴께 얹혔던 돌덩이 하나가 바스러진다.


냉장고를 정리하며 그동안 묵혀 두었던 감정들을 정리하듯 묵은 김치들을 한데 모아 큰 찬통에 담아 고 친정 엄마표  새콤한 묵은지를 빠닥빠닥 씻어서 10여분쯤 담가 놓았다가  된장과 들기름, 마늘 다진 것, 설탕 조금 넣고 지지듯 볶았다. 전골 팬에 덮인 뚜껑이 붉으락 푸르락 숨을 내뿜을 무렵 멸치똥이라 불리는 멸치 내장을 손질한 국멸치를 열 마리쯤 넣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조금 더 끓여 주었다.

묵은지 한 포기는 아들을 위해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푸짐하게 넣고 김치찜으로 만들었다.


그사이 두부 한 모를 지져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묵은지 볶음으로 밥상을 차리고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일상을 바쁘게 보내다 보면 길을 헤매고 여기저기 부딪히게 된다. 잠시 혼돈의 시간이었지만 잠깐 이렇게라도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통증들이 그리 아프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니 그동안의 성장통을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대견하다. 


아프지 않고 평범한 소중한 일상이 감사하다. 매일 맞이하는 오늘의 아침은 어릴 적 소풍 가기 전, 설레어 잠 못 이루던 소녀의 맘처럼 두근두근 설레는 하루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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