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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Jul 02. 2023

낯선 동행

쉼 없던 일상에 '권태'라는 낯선 친구가 찾아왔다.

어렵게 찾아온 친구에게 혼자 놀게 할 수 없어 2박 3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위해 잠 공주도 초대하고, 멍 때리기 놀이도 준비했다.


"나만 따라 해 봐. 기분이 꽤 괜찮아질 거야."

권태 친구의 요구 조건이 많아 귀찮기도 했지만  맡겨 보기로 했다.


우선, 주방 셧 다운!!

눈앞에서 "나를 보아줘" 라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책들도 치우고, 거실에 암막 커튼을 치고 빛을 차단시켰다. 얇은 여름 이불 한 장을 꺼내와 소파 쿠션을 베개 삼아 대자로 누웠다. 산적한 일들이 머릿속에 아지랑이처럼 퍼져서 스멀스멀 올라와 몹시 불편했다.


그때 천둥소리 같은 권태 친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눈 감아!!"

블루투스에 연결한  chet baker의 Almost blue가 흐른다.

친구의 배려로 경직되었던 몸이 스르르 풀려 갔다.

그렇게 한참을 영혼이 배부른 시간을 보내고 나니 허기가 진다. 권태 친구에게 뭐라도 대접해야 하는데ᆢ


셧다운이 된 주방에는 들어갈 수 없어 밖으로 나가 본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친구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어?"

친구가 대답한다.

"너는?"

내가 먹고 싶은 거라고? 결정 장애아인 나에게 "너는?"이라는 질문을 받고 보니  그제야 늘 선택이라는 삶의 시간이 나에게 거웠겠구나 싶었다. 늘 어떤 역할을 해내야만 했던 선택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결국 편의점에 들어가  4캔에 12000원에 파는 블랑 캔맥주를 사고 크라운 산도를 집어 들고 대 여섯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배고픔에 꿀꺽꿀꺽 목 젓이 출렁거리게 한 캔을 마시다 보니 가슴 언저리 끝 몸서리가 쳐졌다. 달콤 바사삭 산도 한  봉지에 캔맥주  한 캔. 1 산도 1캔을  하고 나니 편의점 여정은 끝나고 어느새 해는 기울어 저녁 어스름이 되었다.


먹방 유튜브를 켰다. 배고픔은 사라졌지만 그럴싸한 음식들을 대접하고 싶은 친구에게 눈요기라도 시키고 싶었다. 눈으로 배부른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배달음식마저 시킬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잠 공주는 그동안 자주 불러주지 않아 삐졌었는지 뾰로통하더니 먹방을 보여주자마자 금세  풀어져 내리 8시간을 침대에서 떠나지 않았다.


권태 친구 덕분에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린 시간이었다.

그사이 발 등에 한 달째 도사리고 있던 '피부발진' 적들은 비실비실 힘을 잃고 제 자리를 찾아 후퇴하고 있는지 붉은 상흔들을 남기며 소강상태 중이다.


권태 친구가 말했다.

"언제든 필요할 때 불러줘!!

평범한 하루가 기다려지거나 좋아하는 일이 시들해질 때, 고군분투하느라  잠시 쉬고 싶을 때 말이야"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시절ᆢ

늘 종종걸음으로 앞서 걸었었는데ᆢ

며칠간 권태 친구 덕분에 나를 귀하게 대접한 시간들이었다.


이젠 뒷걸음질도 배워야  할 나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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