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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공주 May 19. 2024

공감이 간절하지만

주변 사람은 전환장애를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도 녀석을 계속 안고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그래서는 안 됐었다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난 가족들에게 휴학이 더 필요하다고 애원했다.



"오리야 괜찮아 별일 아닐 거야. 병원에서도 별 문제없다 했잖아."



엄마가 말했다. 별일이 아니라니. 엄마는 내 옆에서  지켜봤으면서.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지,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일단 졸업만 하자, 응? 졸업은 하고 생각해 보자."



엄마가 말했다. 이모도 말했다. 선생님도 그랬다. 다들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놈의 나중에. 당장 죽을 것 같은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저 지금 아무것도 못 해요 진짜예요'



누구라도 내 목소리 들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들어주는 이가 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



어이없이 쫑알대는 앵무새들을 향해 반박하지 못했다. 미래가 걱정되고 두렵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길을 가기에는 타고나기를 겁쟁이에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종적인 사람이었다.


생에 처음 죽고 싶다는 생각을 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 같은 쫄보 자식은 그런 엄청난 짓을 실천으로 끌고 가진 못했다. 아파트 위로 올라가는 상상도 해봤으나 옥상은커녕, 나에겐 문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벅찼으니.





이후 학교 생활은 기억이 없다. 그냥 고통이었다.


녀석의 무서운 점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다는 것이다. 괜찮은 것 같으니 엄살이거나 진짜 별 게 아닌 줄 안다.


그러다 9년이 지났다. 다시 돌아간다면 배째라 바닥에 드러누울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마음의 휴식처가 될 장소를 찾는 게 먼저였다.





엄마도 이해할 수 없다



엄마,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날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 그만큼 내 기대치도 가장 높았던 그녀의 반응은 총 3단계로 나뉘었다.

 


1단계  부정


"병원에서도 별 문제없다고 했잖아"

 

2단계 과한긍정


“곧 나아질 거야”

 

3단계 무반응


“엄마, 나 너무 힘들어”
(나를 잠깐 쳐다보며) “..."
"이젠 내가 힘들다고 해도 반응이 없어!”
“아니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우리 아기오리공주가 힘들구나,라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셀 수 없이 표현나였지, 그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공감치는 이게 최대였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잘 들어준다. 문제는 나중이 되면 듣기 버거워한다는 것이다. 이해도 못 한다. 겪어보지 않는 이상 그들은 모른다.


상담 1년째, 지난 이십몇 년 간 같이 살던 우리 엄마보다 의사 선생님이 날 더 잘 이해한다.


안타깝지만 당연하다. 주변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깊고 어두운 얘기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거기에 더해 알맞은 반응까지 해줘야 하니, 어려운 일이다.


녀석을 떨구기 위해서는 마음의 치료가 우선이니, 원하는 만큼 쏟아붓고 공감을 받아야 한다. 주변 사람으로부터가 아닌 전문적인 상담으로부터.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네가 쉬고 싶은 만큼 푹 쉬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돼. 괜찮아, 괜찮아.


과거의 날 본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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