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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공주 May 15. 2024

다이어트 후 발병한 전환장애

네 취향은 강박적임




녀석이 내게 찾아온 뒤 몇 년이 더 흘렀다. 난 무언가 과하게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이 커졌달까 너무 그렇게 되려고 한 나마지 '망해버려라'까지 갈 때도 (이 탓에 문제가 된 적이 더러 있지만).


이전에는 완강한 완벽주의자였다.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 사소한 기준조차 무조건 지켜야 하는 사람. 그건 미친 행동을 끝까지 버티게 만드는 그릇된 신념을 키워냈다.


그릇된 신념. 딱 녀석의 취향이었다.





몸무게에 대한 과한 의식



고향 집이 먼지가 되어 날아가고(기구한 사연이 있다)  부산으로 이사 왔다. 새롭게 마주한 건물은 하얗게 때가 탄 허름한 빌라였다. 방 두 개와 부엌이 딸린 작은 거실, 좁은 화장실 하나이루어진 구조였다. 크기도 모양도 냄새도 서울에 살던 집과 완전히 달랐다.


중학교 때부터 애용한 샛노란 패딩을 입은  작은 거울이 붙어있는 옷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웅크려 앉았다. 양 팔로 무릎을 감싼 내 모습이 반대편 거울에 비쳤다. 지난여름보다 두꺼워진 다리가 보였다.


다시 밖으로 나와 뒤를 돌아서 거울을 바라보니 밑 엉덩이가 스키니를 살짝 집어먹고 있었다.


살쪘다.


살아오면서 항상 마른 체중을 유지했는데 키 167에 몸무게 50킬로그램 미만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체중계는 똑똑히 숫자 52를 보여주고 있었고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대신 살이 무진장(?) 쪘다고 믿어버렸다.



'그 아이가 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때 불어닥친 감정은 혹여나 그 아이의 마음이 식을까 싶은 두려움이었다. 내게는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아이 있었는데(지금 보면 참 철이 없었다) 그 애 좋아할 이유로 외모가 큰 지분을 차지할 거라 생각했다(추측이었).


물론 나를 구성하는 긍정적인 요소에는 외모가 다가 아닐 테지만 불안했다. 그것들은 모두 꾸며진 가면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나로서 진실함을 가진 유일한 하나는 외모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강박'



고등학교로 간 이상 전에 누려오던 여유로운 삶은 사라지고 없었다.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대학이란 것에 입학하기 위해  학원에 가고 늦은 시간까지 교실에 남아야 했다.


그렇게 전보다 집중할 일은 많아졌는데 어떡하지. 관심은 다른 것들을 쫒고 있었다.


교복 주머니에 항상 손바닥 만한 거울 넣고 다녔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 수시로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쉬는 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전신 거울 앞을 찾아갔고 길을 걸을 땐 건물 창에 비친 몸을 살폈. 나는 늘 빠지지 않고 거울 안에 내 모습을 점검했다.


살이 쪘다는 생각이 든 후로는 음식 과도한 관심이 생겼다. 평생 살을 빼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내게 다이어트란 물음표 그 자체였고, 당시에는 너무 많은 방법들이 있어 뭘 따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방법을 택했다.


굶기, 하루에 300칼로리(밥 한 공기 칼로리)만 섭취했다. 정확한 칼로리를 알 수 없는 건 먹지 않았다. 급식은 몇 숟가락 먹고 버리고 저녁도 과일 몇 조각으로 대체했다.


쫄쫄 굶는 동안 치킨, 케이크, 빵, 초콜릿 같은 음식을 떠올리며 배고픔을 버텼다. 목구멍으로 그것들이 넘어가는 상상을 했다. 주말이 오면 이러다 죽겠다요동치는 배를 상상했던 것들로 채우 달랬다( 느끼한 걸 어떻게 다 집어넣었는지 의문이다).


성장기 학생에게 턱없이 부족한 칼로리에다 영양가도 없었으니. 안타깝게도 건강하고 탄탄했던 오리공주의 몸은 수분기 없는 고목처럼 말라갔다.





 강박



여기서 끝내야 했지만 문제가 더 있었다.


운동을 하는 방식이 그랬다. 유독 살이 더 빠졌으면 하는 부위가 있어 곳만 따로 골라 몸을 혹사시켰다. 스트레칭도  마음대로 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근육을 자극했다. 잘못된 믿음은 고통스러움의 강도가 셀수록 살이 빠지는 거라며 내게 강요했다.


수업 중에는 책상 밑에서 종아리를 주물럭거리는 손가락이 분주했는데, 이는 상당히 기괴한 짓이었다. 불쌍한 종아리를 괴롭힐수록 돈이 들어오는 사람처럼 허리를 숙여 미친 듯이 주물러 댔다.


그러는 사이 몸은 조금씩 비틀어져 가고 있었다.  모습을 지켜보던 녀석도 내게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과거에 머무른 마음



몸무게는 38 킬로그램에 도달했. 정신에 새빨간 불이 켜졌다.


독한 하루를 마치면 집에 돌아와 쉬어도 모자랄 텐데,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모습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옷을 갈아입거나, 세수를 할 때나, 앞에 보이는 볼품없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리 라인, 팔 라인, 가슴 크기, 치마 밖으로 튀어나오는 셔츠의 모양까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없었다. 저것 봐 전혀 예쁘지 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외모를 지켜야 하는데.


중학교 때 예뻤던 내 모습이 뇌리 속에 깊게 박혔다.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계속 과거를 그리워했다.





어느새 내 옆에 온 녀석이 우두커니 서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곁에는 녀석이 아닌, 착한 친구들이 있었고 적성에 맞는 과정을 밟을 행운도 있었다.


행복할 이유가 많았는데 내게 내려온 축복을 알아채지 못했다. 다시 돌아가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들. 가장 후회되던 시절.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이미 선택했다. 그리고 흘러간 시간은 단 한 번도 결정을 무르는 일이 없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난 둔기를 들고 녀석을 마주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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