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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5. 기록병 엄마의 두 가지 일기장




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처음으로 꾸준히 일기를, 그것도 두 가지나 쓰기 시작했다. 먼저 쓰기 시작한 일기는 나의 개인일기이다. 첫 아이를 낳고 나니 하루하루가 똑같은 반복이었다. . 젖 먹이고 , 나도 먹고 , 집안일하고, 재우고. 그 사이의 짧은 생각들, 심지어 불평마저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먼 훗날 이 시절을 되돌아볼 때 일기장이 없으면 그 시절엔 아무 생각 없이 애만 봤다고 느낄 것 같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
 



아이가 커갈수록 일기장에 쓸 내용이 조금씩 늘어갔다 . 백일 무렵에는 ‘엎드려서 고개를 처음 들었다 ’, ‘ 뒤집었다 ’ 등의 작지만 위대한 행동발달들을 기록해두었고, 돌 즈음에는‘ 아빠, 엄마’ 라는 단어를 처음 말한 날의 감격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언어에 관심이 많은 나는 아이의 언어발달이 참 신기해서 놓치지 않고 기록하려고 애쓴다. 첫째는 고구마를 두고 ‘뿜빠’라고 불렀었고, 혼날 때 ‘ 왜 그랬어? ?’ 라고 물으면 뜻을 몰라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계속’ 이라는 되풀이했었다.
 



이렇게 써둔 일기를 가끔씩 읽어보는 게 일기를 쓰는 보람이다. 재작년 봄 어느 날 첫째는 자기가 만든 장난감을 보고 ‘어마어마하지?’ 라고 물었고, 깻잎에 밥을 싸먹으며 ‘꼼꼼하게’ 쌌다고 좋아했고, 자전거를 타고 들어와서 ‘이제 좀 답답함이 풀렸어’ 라고 했다. 날마다 보여주는 이 눈부신 성장이 그냥 잊힌다고 생각하면, 기록쟁이 엄마로서는 정말 안타깝다. 그래서 아이가 한 인상적인 한마디나 행동들은 그 때 그 때 바로 다이어리에 기록해둔다.



  

Photo by  Calista Tee  on  Unsplash




예전엔 일주일 이상 밀려서 몰아서 쓸 때도 많았는데 밀리면 너무 스트레스여서 최근에는 이틀 이상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마트폰으로 쓰기도 하고, 컴퓨터로 써보기도 했지만 손으로 글씨 쓰는 느낌이 가장 좋아서 다이어리에 손으로 쓴 뒤 자기 전이나 새벽에 일어나서 컴퓨터로 옮겨 적는다. 블로그에 매 해 별도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일주일씩 끊어서 써두었던 일기를 한 달씩 묶어서 총 12개의 일기를 올린다. 이렇게 하니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을 때 찾아 읽기가 편하다.
 



둘째, 셋째가 태어난 뒤에는 첫째의 같은 개월 때의 일기를 비교해보는 게 또 하나의 재미다. 첫째만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징징댔는지 확인하고, 엄마로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사진으로 기록되지 않은 그 날의 모습,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이 선연히 떠오르는 것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다. 할머니가 되어 시간이 많을 때 읽어볼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신난다.
   



두 번째 일기는 아이들을 위한 육아일기이다. 100일 연속으로 일기를 쓰면 무료로 책을 출판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맘스다이어리 어플을 사용한다. 매일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기록하지는 않고, 몇 달에 한 번씩 컴퓨터로 핸드폰 사진을 옮긴 뒤 그 중에서 특별한 날이나 사진이 예쁘게 나온 날만 사진을 올리고 4 줄 정도 내용을 적는다. 한 아이 당 일 년에 한 권씩 만들어주는 게 목표인데 남편은 책 만들기가 너무 힘들면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육아일기 보는 걸 엄청 좋아하고 다음 책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사진앨범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엄마가 첫 딸인 나를 낳으셨을 때 할아버지께서 그 당시 귀하던 필름 카메라를 선물해주셨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 삼남매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다 앨범을 만들어주시고 그 옆에 짧은 글을 써주셨다. 땅에 누일 새도 없이 늘 대가족 중 누군가에게 안겨있던 모습, 고등학교 때까지 덮었던 배냇이불을 깔고 누워있는 모습이 그 앨범에 다 담겨있다. 가끔씩 그 앨범을 보면 그 때 받았던 사랑이 시공간을 넘어와서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사진 옆에 쓰인 엄마의 정갈한 글씨체를 보고 있으면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특별한 존재로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만든 육아일기을 볼 때 그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의 수고는 조금도 아깝지 않다.

 

Photo by  __ drz __  on  Unsplash

  


사진관에서 잘 차려입고, 예쁘게 꾸며놓은 배경에서 찍은 사진도 예쁘지만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잘 아는 엄마의 시선으로 찍은 사진들도 사진작가의 사진들 못지않은 '작품'이 된다. 처음 먹어보는 신 레몬을 먹을 때 잡힌 미간 사이의 주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순간 환희를 머금어 동그란 입을 엄마가 아니면 누가 찍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이유식 먹여주시는 모습, 할머니 등에 업혀 잠든 모습, 돌상에 올라온 외할머니의 손글씨가 적힌 봉투, 고모가 어린이날 선물로 사준 장난감들도 빠짐없이 기록해둔다. 할아버지, 할머니 , 고모와 고모부, 이모와 외삼촌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다 기억할 수 있도록.
  



첫째 때는 주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책을 만들면서 찍어두었던 동영상을 보니 그 순간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보는 감동이 더 컸다. 그래서 이제는 동영상도 주저 없이 많이 찍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아침 먹는 모습이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이라도 고작 몇 개월 뒤에 보면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나의 모든 사진과 동영상들, 일기장은 다시 한 번 과거를 살게 해주는 타임머신이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젊은 엄마가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미리 보낸 선물이다. 선물 받은 사람의 미소를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오늘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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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일기

#맘스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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