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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Dec 29. 2020


Welcome to my office

소소(笑疏)육아

티브이에서 ‘트래블러’라는 프로그램의 아르헨티나 편을 보았다. 아르헨티나라는 나라가 아직 내겐 생소해서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스카이다이빙을 앞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게 꿈인 둘째딸도 곁에 바짝 붙어 앉아 비행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 명의 여행자 중 두 번째로 배우 강 하늘 씨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처음에는 낙하산을 펴지 않으니 정말 하늘에 맨몸을 던져 땅을 향해 떨어진다. 잠시 뒤 낙하산을 펴니 순간적으로 몸이 위로 솟구친다. 곧이어 온몸으로 공기를 뚫고 지나가며 생기던 소음이 갑자기 사라지며 사위가 고요해졌다. 강하늘 씨가 아래 쪽의 풍경을 둘러보고 완벽하다며 감탄하자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Welcome to my office.”     




‘세상에, 저 아저씨에게는 하늘이 오피스라니!’ 내가 방금 하늘에서 뛰어내린 것 같은 강도의 충격으로 그 말이 다가왔다. 그 충격의 의미를 그 날 내내 곱씹어보았다.           








그 충격은 나의 부업, 글쓰기를 위해서도 오피스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할 때는 손님이 올 때 쓰던 좌식상을 사용했었고, 낮에는 짬이 나면 식탁에 앉아 책을 봤다. 컴퓨터로 할 일은 식탁에서 하면 아이들이 자꾸 모니터가 터치로 작동하는 줄 알고 눌러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김치냉장고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서서 일처리를 하곤 했다.           

어떻게 오피스를 차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에 독일어 과외할 때 쓰던 접이식 책상이 떠올랐다. 셋째 임신하고부터는 과외를 쉬고 있어서 베란다 창고에 두고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그 책상을 깨끗이 닦아서 아이들 장난감 방에 두고 플라스틱 책꽂이까지 올렸다. 그리고 다이어리와 요즘 읽는 책들을 꽂아두었다.         



  

언제나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는 나의 일상을 든든히 지지해주었다. 집안일 하다가 지쳤을 때 가서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다이어리도 펴두니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고, 읽고 있는 책도 책상에 펴두니 더 자주 읽게 됐다. 성경을 펴두니 성령충만한 셋째가 와서 볼펜으로 벅벅 그어놓고 “성경, 공부, 아멘.”이라며 칭찬을 요구하는 미소를 날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방에 접이식 책상 하나 놓는 것, 그 작디작은 일. 내 집에 언제나 편히 앉을 내 자리 하나 만들 생각을 왜 여태 못 했을까. 첫째가 내년에 8살이 되니 첫째 공부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주어야 할까 생각은 해봤지만 내 책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아르헨티나의 스카이다이빙 강사 아저씨의 한마디로 홈오피스를 구현하게 됐다.           




출처 민음사




그리고 일주일 전 이사를 했다. 4층 남향집에서 8층 동향집으로 옮겨왔는데 내 방은 서향으로 창이 난 작은 방으로 정했다. 이전 집은 남향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노을을 보려면 저녁 무렵에 밖에 있어야 했는데 이제는 저녁을 차리다 잠시 내 방에 들어와서 주홍빛, 분홍빛, 쪽빛 노을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이전 집에서는 책상 하나로 만족했던 나는 이번 집에서는 어떻게든 내 방을 사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타올랐다. 자비로운 남편은 한 달 간 가구 위치 변경 자유이용권을 발급해주었다. 이전 집에서 책상과 같이 있던 아이들 장난감과 서랍장은 모두 거실과 안방으로 몰아내버렸다. 이리저리 바꿔보다가 아이들이 마구 여닫아 서랍 레일이 삐거덕대는 서랍장을 내 옷 전용으로 방으로 들여왔다.           




생전 안하던, 땀나는 운동도 한 번 해보겠다며 시댁에서 어머님의 열띤 호응 가운데 실내자전거도  업어다 내 방에 들였다. 소중한 친구가 이사를 축하하며 보내온 홍콩야자(애칭 홍콩이)도 책상 앞에 두었다. 심지어 방열쇠에도 여동생이 선물해준 빨강머리앤 열쇠고리를 달아 ‘취향의 완성’을 이루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에는 연년생 여동생과 함께 방을 썼었다. 덕분에 정말 머리채 뽑고 뽑히며 많이 싸웠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그 작은 방에 어떻게 이층침대 다섯 개를 꼭 맞게 넣어놨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참 미스터리하다. 야자가 끝나고 몸은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면서도, 시선과 마음은 봉고에 올라 부모님이 계신 제 집으로 가는 친구들을 흘깃거렸다. 대학 때는 고시원에 살았는데 학교 앞 대로의 소음와 먼지가 내 몸을 위협하고, 누군지 알 수 없는 발소리가 내 방 앞을 지나가길 숨죽여 기다리던 작은 방 역시 내 마음이 기꺼이 머물기 원하는 곳은 아니었다.           




심지어 결혼을 하고 살았던 여러 우리 집들 중에서도 전공서적이 많고 피아노가 있는 남편방과 조용한 잠자리가 필요한 아이방은 있었지만 ‘내 방’으로 이름 붙여진 곳은 없었다. 놀랍게도 이 방이야말로 삼십 평생에 처음 내 취향대로 꾸며본, 내 책과 옷으로 채워져 있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으로 둘러싸인 내 방이었다.        



    





보통 아이가 8살이 되면 많은 부모님들이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해주려고 하지만, 나는 첫째방과 내 방의 기로에서 내 방을 선택했다. 첫째에게 혼자 방에 들어가서 수학 연산 1쪽을 풀고 있으라 하고 좀 있다 들어 가보면 연필꽁무니로 콧구멍 크기 재기만 하고 있을 뿐이고, 아이도 공부할 때 엄마가 옆에 같이 있는 게 훨씬 좋다고 해서 아직 첫째방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얼마 전 읽은 ‘거실 공부의 비법’이라는 책에 따르면 독립된 공부방보다는 거실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고, 더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또 다른 조사결과에 따르면 거실에서 공부하던 아이가 공부방을 따로 만들어 공부한 후 성적이 떨어진 경우가 60~70 퍼센트에 달한다고 하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만의 방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임이 분명하다.           




내가 사랑하는 이정록 시인의 시 ‘의자’에서 시인의 어머니는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 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거여’라고 하셨다. 나도 말하고 싶다. 꿈꾸고 글 쓰는 게 별건가. 방 한 쪽에 책상 하나 펴놓고 책 읽고 용기 내어 연필을 드는 거라고.           




책상 하나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넓어진 내 방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는 나의 의지이다. 쉼 없는 집안일과 아이들의 소란이 버거울 때 방에 들어와 ‘홍콩이’의 그 반질반질한 잎사귀를 만져본다. 조용히 살아있는 것에 대한 동질감이 촉각으로 전해진다. 이 작은 나무도, 내 방도 조용히 여기 있다. 내 방이 거기 있으니 새벽이나 혹은 늦은 밤에, 그리고 낮에도 틈틈이 나도 이 방에 있을 것이다. 그 방에서 나는 날마다 읽고, 쓰고, 울고, 기도하고 다시 나올 것이다. 




Photo by Kari She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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