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육아
셋째의 두 돌을 이틀 앞둔 일요일 아침, 가장 먼저 일어난 셋째를 내복바람에 잠바만 입혀 들쳐 안고 집 앞 편의점으로 나섰다. 그리고 임신테스트기를 사왔다. 그렇게 또 한 번 뱃속의 생명을 확인했다.
네 번째이니 임신도 설레기보다는 반지의 제왕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는 기분이 든다. 정말 재밌는데, 참 긴 그 여정. 내용이 어떤지 다 알지만, 다시 보면 또 조마조마하고 행복한 그 이야기. 그 임신과 출산이라는 드라마를 나는 또 한 번 써야했다.
프로 임산부답게 임신을 확인한 뒤 4시간 만에 ‘사랑’이로 태명을 정했다. 앱스토어에서 둘째, 셋째 때 애용했던 ‘아이랑스토리’라는 어플을 다운받아서 오늘 나의 상태와 뱃 속의 아이 상태가 어떤지 확인했다. 엽산이 들어간 영양제를 주문하고, 태아에게 혈액이 잘 전달되도록 밤에는 왼쪽으로 돌아누워 자기 시작했다.
뱃속의 ‘사랑이’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그걸로 다 했다고 생각했다. 임신을 하긴 했지만 세 아이 가정육도 나의 공부도 모두 그대로 이어가고 싶었고, 별 무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선 새벽기상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전에 일어나던 5시는커녕 8시에도 눈이 떠지지가 않았다. 7시쯤 되어 아이들이 일어나면 의식은 깨어나지만 눈꺼풀은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먼저 일어난 아이들이 놀다가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뭔가 우당탕탕 소리가 나면 그제야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밤에 많이 잤으니 낮에라도 안 졸리면 다행인데 셋째를 재울 때면 오전에 나가놀거나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잠이 쏟아진다. 이렇게 골룸의 반지보다 프레셔스한 나의 소중한 자유시간이 잠으로 모두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네번째 입덧은 예상 외로 심했다. 언제나 조금씩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 내 기억에 세 아이 입덧은 이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기에 이번엔 좀 많이 심한 입덧에 놀란 나머지 남편과 둘이서 쌍둥이는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역시나 쌍둥이는 아니었지만 그 뒤로 구토감은 꾸준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배가 아주 부른 상태가 되면 구토감이 조금 가시는데 대부분의 시간에는 계속 구토감이 들고, 좋아하던 커피향기마저도 역하다. 기껏 먹고 싶었던 메뉴를 먹으러 갔어도 먹는 내내 구토감과 싸우며 꾸역꾸역 억지로 밀어 넣기도 한다.
인간의 생활이 먹고, 자고, 일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면 그 세 가지 모두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뱃속의 아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임신이라는 이 상태에 대해서는 꽤 짜증이 나있다. 그 짜증이 쌓여 어느새 내 몸엔 옅은 안개 같은 우울이 엉겨있다. 너무나 무기력해서 집안일은 물론이고 습관이라서가 아니라 하나하나 기쁨으로 해왔던 일상도 버거워 멈추었다. 매일 나가던 산책, 반찬 1가지라도 만들어먹던 노력, 아이들과의 가정예배, 매일 일기 쓰기까지도.
오늘도 안방에는 셋째를 재우고, 작은 방에는 큰 애들에게 영상을 틀어준 뒤 입덧방지를 위해 찐 옥수수 하나를 우걱우걱 겨우 먹었다. 졸음이 쏟아져 거실 바닥에 누워 잠들어버렸다. 셋째가 잠든 지 30분도 안 되어 나오길래 “엄마 여기 있어.”하고 부르니 냉큼 내 옆에 누워 다시 잠든다. 셋째는 잠에, 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오늘도 왜 이리 무기력하고, 우울한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굉장히 감정적인 편이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잘 안 되지만 어떻게든 감정에 끌려가지 않을 이유를 찾아야 했다.
무엇을 생각하면 조금 덜 힘들까 생각하다가 지난 주 찍어온 7주차 초음파 사진을 떠올렸다. 아이가 들려준 생생하고 우렁찬 심장박동 소리에 비해 그 크기는 고작 1.5cm로 아직 손과 발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 작은 아이가 내 몸 전체와 삶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건지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이 지긋지긋한 입덧과 피곤함은 어쩌면 넷째가 엄마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 내가 잘 크려면 좀 더 쉬어주세요.’
첫째 입덧 때는 두 번의 유산 후 겨우 가진 아이였기에 3개월까지는 무척 조심을 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무거운 걸 들면 안 된다기에 첫째를 업거나 안는 걸 굉장히 조심했었다. 하지만 셋째를 임신했을 때는 둘째가 워낙 안 자는 애라서 이전처럼 낮잠, 밤잠을 업어 재워야 했고, 두 아이 가정육아도 겁 없이 지속했었다. 그랬으니 넷째를 확인하고서도 여전히 셋째를 업어 재웠고, 세 아이 가정보육과 나의 공부 역시 지속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교만이었고, 착각이었다. 세 아이 입덧과 임신 초기가 견딜 만 했다고, 넷째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넷째는 독보적인 입덧과 잠으로 나의 모든 일상을 멈추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장 작은 나를 잊어선 안 된다’며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뱃속의 아이는 큰아이들 돌보는 일과 엄마의 자유시간보다도 지금은 나를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의 몸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잠과 입덧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전의 일상을 유지했을 테고, 그것은 태아에게는 무리였을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자기를 지키고, 엄마를 지켜주고 있었다.
입덧 증상은 이르면 12주~14주, 늦어도 20주면 가라앉는다. 네 번째 입덧으로 고생하며 처음으로 입덧이 왜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지 이유를 생각해봤다. 입덧이 아이가 엄마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첫 신호라면 그 다음 신호는 태동이다. 태동은 10-12주 정도에 시작하지만, 엄마는 대략 16~20주경 느끼기 시작한다. 입덧이 끝나고 태동이 시작되는 시기가 매우 비슷하다는 데 놀랐다. 태동으로 아이 몸을 통해 스스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기 전, 아이는 너무 작으니 엄마의 몸을 통해 엄마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상상일까. 과할지는 몰라도 입덧의 고통을 조금 덜어주는, 고마운 상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차갑고 단단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못해서, 알아듣지 못해서 미안해졌다. 눈에 보이는 세 아이 먹이고 놀아주는 것만이 육아가 아니라, 아이가 뱃속에서 나온 뒤 나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출산 이후부터가 육아가 아니라 임부인 나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육아 중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늘부터 입덧이 끝날 때까지는 부지런히 먹고 자고 쉬며 ‘넷째 육아’에 전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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