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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증명사진을 보며

by 행복마중 윤정란


제 책상에 탁상 거울이 하나 있습니다.

예쁘지 않은 얼굴이지만, 외출할 때 화장을 하려면 탁상 거울이 있어야 편하더라고요.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하나 사 왔던 탁상 거울이지요.

몇 달 전 물건 정리를 하다가 증명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1~2장 필요한테 증명사진을 찍으면 여러 장을 받게 되니 늘 남습니다. 사진이라 버리기도 그렇고 늘 한곳에 모아두었죠.

아들의 증명사진이 생각보다 많네요.

처음 여권을 만들었을 때 사진, 여권 만료되어 또 찍은 사진, 중학교 입학하면서 찍은 사진,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찍은 사진, 얼마 전 주민등록증 발급하면서 찍은 사진.

사진을 쭉 늘어놓고 보니 아들의 커 온 모습이 보입니다.



이 사진들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매일 보면 좋겠다 싶어서 탁상 거울 하단에 아들의 사진을 시대 순으로 쭉 붙여 두었습니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니 오늘은 아들의 사진이 눈에 딱 들어오네요.

어릴 때, “엄마, 엄마~” 쉴 새 없이 부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이만의 개구진 표정도 떠오르고요.

밖에서 뛰어놀다가 상기된 얼굴로 집에 들어오던 모습도 떠오르고요.

조용히 방에 앉아서 레고를 조립하던 모습, 건담을 조립하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최근으로 올수록 떠오르는 기억은 툴툴거리는 모습입니다.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말이죠.



기억이란 참 신기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빨리 커라’를 수도 없이 외치면서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아이의 미소 짓던 모습, 즐거워했던 모습만 떠오르네요. 그리고 그 시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 아이가 웃게끔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못했던 아쉬움도 함께 남습니다.

지금의 아이 모습은 툴툴거리는 것만 떠오르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툴툴거림 속에서도 아이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재미있는 유튜브를 보면서 “엄마, 이것 좀 볼래?” 하면서 웃으며 다가와 보여주었던 모습들이 떠오르겠죠. 그래서 나중에 또 후회하지 않고 싶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잘 보내보려 합니다.

화내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끝가지 들어주려 하고요. 잔소리도 덜 하려 하고요.



저는 아이의 웃는 모습만 기억을 하는데, 아이에게는 어릴 때 어떤 기억이 떠오를까요?

설마, 엄마한테 혼났던 것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겠죠?

살짝 두려워지네요. 아이에게는 어떤 기억이 남아있을지.

아이에게 물어보면, “몰라, 기억나는 거 없는데?”라고 말하기 귀찮다고 하겠지만, 편안해 보일 때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상담 공부를 하고, 상담했던 것을 슈퍼비전 받다 보면 지도해 주시는 원장님과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됩니다. 저에게 가장 후회되는 것이라면 아이가 어릴 때 아이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입니다.

바쁠 때는 아이 자는 모습 보고 출근해서, 아이가 잘 때 퇴근하고 들어온 적도 많았고, 주말에 출근하거나 교육받으러 가는 일도 많았거든요. 그때가 참 후회된다고, 아이에게 미안했다고 말하면, 그 시간에 대해서 아이와 이야기 나누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혼자서만 생각했지, 아이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이와 그때 엄마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아이의 감정은 어땠는지 물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이가 많이 외로웠었다면 지금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릴 수 있다고요.

“네가 4살, 5살 때 엄마가 많이 바빴잖아? 집에도 잘 없었고. 매일 일한다고 출근하고, 집에서도 일만 해서 그때 많이 심심했었어? 엄마랑 놀지 못해서 속상했었어? 엄마는 그때는 일이 급해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너랑 더 많이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워.”

라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바쁘니까 어쩔 수 없었지. 나는 그때 별로 안 심심했는데.”

라면서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진짜 마음인가 싶기도 했지요.



고3이면 다 커서 엄마 찾을 일 없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릴 때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인지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기가 뭐 하고 있을 때는 말 거는 것도 싫어하면서 거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유튜브를 볼 때면 웃긴 장면이 나오면 엄마부터 찾네요. 같이 보자고요.

아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좋아요를 누르면, 다가와서 말합니다.

“뭘 또 좋아요를 눌렀어~”

“엄마가 좋아요 누르니까 좋지?”

“엉.”

“엄마는 네가 뭘 하든 다 좋아.”

아이는 씩 웃으며 소파로 갑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비록 수입은 적어졌어도 아들과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제 품을 떠날 때까지 매일매일 소소하게 일상을 즐기려 합니다.

이런 시간 속에서 아이도 저도 앞으로 펼쳐질 각자의 삶에 대한 힘을 얻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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