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만큼은 정말 잘 키워야지.’
부모라면 모두가 하는 생각일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으로 뱃속의 아이를 출산하고 지금까지 키워왔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면 후회가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삶에서 ‘~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있을 수 없죠. 시간을 이미 흘러갔기 때문에요.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보는 것은 ‘~했더라면’하면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건강하다는 뜻 안에는 참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질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걸 밀고 나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 아프지 않은 것,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환하게 웃을 줄 아는 것,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등등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기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삶의 곳곳에서 저의 가치관을 정립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생기는 후회, 아쉬움이 2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계속 일을 했기에 늘 출퇴근 시간의 압박 속에서 살고, 그때그때 닥친 업무들을 잘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잘 해야 한다는 강박,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유능해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긴장은 사람이 더 노력하게 해주기에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노력을 하면서 아이에게 비어버린 엄마의 시간이 지금에 와서 보니 너무 후회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때로 돌아간다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저는 제 일을 좋아했고, 저에게 의미와 가치도 있었으니까요. 그 일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고요. 다만, 집에 있는 시간에, 중간에 조금 짬이 생겼을 때 그런 틈새 시간에 아이와 한 번 더 눈 맞추고, 아이 목소리 한 번 더 듣고, 아이에게 한 번 더 웃어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아이가 저를 찾을 때, “잠깐만”, “이것만 하고”, “혼자 놀아”, “엄마 지금 바빠”라고 아이가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며 내뱉었던 말들을 조금만 더 줄일 걸 하는 후회가 드네요.
두 번째는 아이와 더 많은 책을 함께 읽지 못한 아쉬움입니다.
지금에서야 많은 감정을 느끼고, 많은 언어를 알고 있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감정을 느끼고 언어를 아는 것엔 책만큼 좋은 것이 없지요. 아이가 원하는 책을 100번이고 200번이고 계속해서 읽어주며 아이의 반응을 보고 저도 반응을 하는 시간을 한 번 더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그랬다면 아이의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고요.
책을 함께 보면서 한 번 더 품에 안고 책을 읽고, 한 번 더 내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고, 아이와 조금 더 많이 웃고 울면서 서로의 감정을 나눌 걸 하고 후회가 되네요.
아이를 키우며 더 잘 해주고 싶고, 더 잘 키우고 싶고, 더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고,, 더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싶고, 더 좋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다 키우고 나니 ‘더 좋은’에 매몰되어 있던 시간들이 참 많이 아쉽습니다. ‘더 좋은’ 대신에 ‘한 번 더’의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했어야 했음을 이제서야 느끼게 되네요.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 더 눈 맞추고, 한 번 더 웃어줄 걸 하고요.
아이의 감정에 더 자주 반응을 하고,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넓혀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가 됩니다.
그러나 육아란 끝이 있을까요? 내 아이가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부모 눈에는 어린 자식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하죠. 그렇기에 부모에게 자식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고요.
어릴 때와 성인이 되었을 때는 방법은 달라져야 하지만, 자녀의 감정에 반응하고 언어의 한계를 넓혀줄 수 있는 건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아이에게 하는 말을 통해 아직도 이것들을 전해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