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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 SUN HYE Jan 03. 2020

"언니는 벌써 33살이네요?"

나는 내가 33살이라서 너무 좋은데

나는 항상 모든일에 있어서 나이와 현재의 상황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것 같다.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주변사람들까지 내가 33살이기 때문에 현 상황에 대해 궁금해하고 나이를 논한다. "우와 언니가 벌써 33살이라니" "33살인데 빨리 애를 낳아야지" 그들은 마치 내가 33살인게 불안하고 초조해하길 바라는 것처럼 질문한다. 내가 1년전에 결혼을 한 것도, 내가 현재 아이를 갖지 않는 것도, 자기계발에 투자를 하는 것도, 전부 나의 현재 가치관에 따라 즉흥적이면서도 매우 신중하게 선택한 나의 인생이다. 매우 늦게 결혼할 생각이였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 바로 결혼을 하게되고, 조금 더 아껴서 자기계발에 투자를 하는 것도 온전히 내 현재시점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내가 접하고 있는 주변환경과 사회현상, 내가 읽은 책들, 외부의 영향으로 형성된 세계관 등 수많은 요소들이 내가 하는 모든 선택에 있어서 영향을 미친다. 현재시점에서 내 선택의 기준들은 미래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미래에 내가 어떤 새로운 환경이나 책들을 접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나이를 정확히 모르고 오랫동안 인연을 지속해 온 분들도 많았다. 나이에 관계없이 그들은 너무나 멋지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었다. 단지 서로의 특성과 경험의 차이에 따라 항상 배울 점이 있기에 굳이 나이를 알 필요가 없었다. 



10여년 전, 20대에 너무 감사하게도 우연히 서점에서 만나게 된 폴란드 시인이 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그녀의 언어가 조금은 어려운 감이 있었지만, 왠지모를 심오함과 기교없이 섬세하고 담백한 언어들에 순간 벅차오르는 감동이 있었다. 이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졌다.

쉼보르스카는 자신이 생각하는 독자들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한 바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책의 독자는 남자건 여자건 간에 아무튼 인생에서 크게 성공한 상류층의 모습은 아니에요. 수영장과 분수대, 온갖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호화로운 저택에 앉아 내 시집을 읽는 독자의 모습은 왠지 상상이 가질 않아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거든요. 반면에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독자의 이미지는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지만, 일단 지갑이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다시금 확인해봐야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돈이 많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망설이지만, 그래도 꼭 읽고 싶어 끝내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내가 상상하는 내 책의 독자들입니다.”  
두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였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 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 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두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공짜는 없다. 모든 것은 다 빌려온 것이다. 내 목소리는 내 귀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를 고스란히 내놓아야 하며, 삶에 대한 대가로 생명을 바쳐야 한다. 자, 여기 모든 것은 이미 준비되었다. 심장은 반납 예정이고, 간도 돌려주기로 되어 있다. 물론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도 마찬가지. 계약서를 찢어 버리기엔 이미 늦었다. 내가 진 빚들은 전부 깨끗이 청산될 예정. 내 털을 깎고, 내 가죽을 벗겨서라도. 나는 빚진 자들로 북적대는 세상 속을 조용히 걸어 다닌다. 누구는 자기 날개에 대한 빚에 눌려 내려앉고, 또 다른 누구는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나뭇잎 한 장, 또 한 장... 셈을 치르는 중이다. 우리 몸속의 세포조직들은 빚쟁이 손에 모조리 넘어가 버렸다. 솜털 하나, 줄기 하나도 영원히 간직할 순 없는 법. 장부 기록은 모두 정확하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는 빈털털이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무(無)의 상태로 남겨질 예정이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내 이름이 적힌 이 복잡한 명세서를 스스로 펼쳐 보게 되었는지. 이 거래에 반대하는 지급거절증서를 우리는 ‘영혼’이라 부른다. 이것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유일한 항목이기도 하다.      '공짜는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 멋있는 할머니는 폐암으로 2012년(88세)에 돌아가셨다. 10년전에 읽은 쉼보르스카의 시와 지금 읽는 시는 같은 글인데도 차원이 다르게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녀의 인생을 디테일하게 알순없지만 그녀의 글만 봐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요'를 되풀이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쓴 작품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또다시 망설이고, 흔들리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이 작품 또한 일시적인 답변에 불과하며,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통감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 번 더',  또다시 '한 번 더', 시도와 시도를 거듭하게 되고, 훗날 문학사가들은 어떤 시인이 남긴 계속되는 불만족의 징표들을 모두 모아 커다란 클립으로 철하고는 그것들을 가리켜 '시인이 일생 동안 쓴 작품'이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이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겸손한 자세로 영혼의 안식을 거부한 채 끊임없이 시도해보고 망설이고 흔들리고 헤매던 길목에 그저 선물이 주어지는 그런것.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삶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라" 라는 것이다. 나는 삶이 주는 선물에 그저 감사할 뿐 그 어떤 고통과 불안함도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충분히 헤매고 흔들릴 것이다. 



33살이라는 숫자는 남녀성별을 떠나서 참 애매한 나이다. 공무원 준비하던 사람도 애매한 나이이고, 취업을 했어도 높은 직급도 마냥 낮은 직급도 아닌 권태기가 오기 가장 좋은 나이이며,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에 은근히 두려운 나이이고, 결혼을 했다고 해도 육아문제나 미래설계 등등 싱숭생숭 할 수 있는 나이이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에서 생겨났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나는 이 사실을 매일 기억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을 사랑할 것이다. 세스고딘은 "가장 안전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현재 이런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 나가고 있다. 33세의 나이라는 숫자가 별로 와닿지 않으며 그다지 신경쓰이지도 않는다. 매일 도전하고 압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나갈 것이다. 


나는 매일 점점 더 내 현재나이가 좋아지고 있다. 20대 초반에는 학창시절의 불안정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공부보다 내가 더 즐거운 디자인 공부를 할 수 있음에, 자유로울 수 있음에 좋았고, 20대 후반에는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면서 조금은 불안하지만 '나는 모르겠어요'를 외치며 끊임없이 인생을 탐구하고 실수와 실패를 겪으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들을 했기에 더더욱 좋았으며, 30대때는 사랑하는 동반자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며 이전보다 단단해졌고, 하루하루 내가 원하는 속도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최고로 좋다. 지금은 20대때로 굳이 돌아가고싶지 않다. 아마 40대, 50대가 되어도 똑같이 현재가 더더욱 좋다고 외칠 것 같다. 


나는 지금 내가 33살이라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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