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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Sep 01. 2020

스펙이 뭐가 중요해?

공감과 선택 7

과거 100년의 역사 속에 겪었던 변화보다 최근 5년간의 과학기술 혁신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가 더 크며, 지금 존재하는 직업이 미래에 존손 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오늘도 더 좋은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 젊은이들의 스펙 만드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스펙은 구직자가 자신의 학력, 학점, 토익 점수, 자격증 따위를 기록한 업적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스펙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인재를 선택하는 더 좋은 기준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을 점수화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과 젊은이들이 인지하고 준비하는 스펙 사이에 갭은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함께 던진다.


지금껏 우리는 자신이 속한 무리 속의 평균을 기준으로 위에 속하는지 아래인지를 비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평균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잘하는 사람은 평균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지를 비교한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점수화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내게 점수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일이 있다.


몇 년 전 제어공학(Control Engineering)이란 과목을 강의하던 때의 일이다. 내 강의는 특히 시험이 많았는데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를 중시하는 개인적인 견해를 고수하다 보니 F가 많기로 유명했다. 공학분야에서도 수학을 가장 많이 써야 하고 어려운 과목이다 보니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생에게 호기심을 유발하도록 동기부여를 위해 첫 수업시간에 전자석의 힘을 제어하는 장치를 설계하는 장기(Long-term) 과제물을 공지했다. 전자석의 반발력을 제어하여 쇠구슬을 임의로 세팅한 높이에 일정하게 띄우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학기 중에 과제를 종료한 학생은 이후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며, 시험을 안 봐도 A학점을 준다고 공지했다.


 사실, 한 학기 과정을 완벽하게 이수했어도 이 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과제의 결과물을 기대하기보다는 강의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흥미를 갖도록 할 목적에서 제시한 것일 뿐이었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채점한 답안지를 학생들에게 돌려주다 보면 몇 명은 자연스럽게 얼굴과 성적을 기억하게 된다.

"이번 시험은 xx군이 1등이네! 모두 박수 쳐주자."

"어? 자네 백지 낸 거야? F 안 받으려면 다음 시험부터는 모두 만점 받아야겠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이번 시험 전체 평균은 50점을 넘지 못해서 조금 실망이다. 작년 선배들보다 10점이나 낮아!. 이대로는 안 되겠군. 50점 미만 학생은 다음 주 재시험 준비하도록."


그때,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한 학생이 무언가를 담은 상자를 가지고 쭈볏쭈볏 내게로 나왔다.

중간고사 시험에서 백지를 낸 바로 그 학생이다. 지금까지 3번 치른 시험 평균이 100점 만점에 20점을 넘지 않은 내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고 수업시간에도 뒤쪽에 앉아 학습 태도가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교수님이 학기초에 말씀하신 과제를 만들어 왔는데 지금 제출해도 됩니까?"

강의실 안에는 순간 침묵이 흘렀다.

당혹스러웠다.

모든 학생이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제작한 과제물의 시범을 보였고 완벽한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요구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근접한 결과였다. 학생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왔을 때 한동안 나는 내 강의의 유용성에 대해 돌아봐야 했고, 수십 년간 학생을 평가하며 기준 점수에 미치지 못하면 소신껏 F를  줬던 많은 학생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일시에 당신의 강의와 평가는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강의하며 평가해온 점수는 모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과제물을 제출한 학생은 강의를 듣고 수학적으로 답을 구하는 시험에는 자신이 없지만 실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은 유튜브 등을 통해 충분한 능력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었다. 사실 공학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수학은 설계의 개념을 정립하고 표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학생은 이미 내 강의 수준을 넘어 지금 당장 기업에 취직해도 될만한 충분한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물론 그 학생은 이후 내수업을 간헐적으로 들어왔고 기말고사까지 한 번도 시험 응시를 안 했지만 약속한 대로 A학점을 주었다.




 

스펙의 구성요소 가운데 좋은 성적이 갖는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올해 조사한 전국 대학 학점 부여 현황을 보면 평균 졸업 학점이 4.5 만점에 평균 3.39 점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가장 높은 곳은 한체대로 4.26점이다. 서울대는 3.67점으로 전국에서 3번째로 높다. 

과연 학점이 높으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로 볼 수 있는 것일까? 

학점 인플레이션은 결국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학교는 교육부 평가에 유리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교수는 자신의 업적평가에 반영되는 강의평가에 대한 좋은 피드백을 받기 위해, 학생은 취업에 좋은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


스펙은 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이기 위한 것이다. 내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고, 경쟁자보다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의 스펙이 이것을 명확히 설명하는지에 대해서 "그렇다"라고 답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이제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구체화되고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무한경쟁시대에 필요로 하는 능력은 일률적으로 같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사회에서 요구되는 능력은 회사별로 더욱 다양해질 것이며, 앱 개발자, 게임 평가 전문가, AI 시스템 설계자 등 새로운 형태의 직업에서 요구되는 능력은 점수화된 일률적인 스펙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회사에 적합한 맞춤형 스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글로벌 회사들이 직원을 채용하는 기준과 절차의 변화가 그것을 말해준다. 공학분야의 경우 대부분 4,5 단계의 능력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좋은 학벌이나 최고의 학점 등은 서류전형에 필요한 최소의 자격여건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의 정량화된 스펙 요소들이 합격을 좌우하지 않는 것이다. 서류 전형에서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는 스펙은 대학생활 중 관련 분야의 회사에서 인턴을 했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구글의 소프트 엔지니어 신입사원 채용과정을 보면 서류 상 기본여건이 충족되면 온라인에서 1차 프로그램 능력을 평가한다. 정해진 시간에 온라인 상에서 주어진 코딩 기본 능력을 시험하고 결과에 따라서 전화면접 단계로 넘어간다. 전화면접 또한 전공지식에 대한 실무자의 직접적인 평가이다. 전화면접을 통과하면 인력이 필요한 팀의 팀원들과 대면 면접을 하게 되는데 보다 실질적인 업무능력에 대한 평가를 하루 종일 실시한다.

해당분야의 업무 처리 능력에 대한 심층적인 평가와  함께 토론, 대화, 발표 등 다양한 형태의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러한 면접이 끝나도 신원을 조사하는 기관에 의뢰해서 범죄와 마약 등의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자 주변의 지인에게 인성과 평판을 듣기 위한 전화 면담까지 이어진다. 좋은 회사를 취직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계획된 준비가 필요하고 대학생활을 건전하게 보내야 하는 것은 필수 요건인 셈이다. 직원의 채용이 결정되는 전 과정에서 CEO가 개입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이슈화되곤 하는 채용비리의 문제점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셈이다.


이제 사회는 점수화된 스펙을 요구하는 것에서 점차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 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토익 몇 점이 아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곧 스펙이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지식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 오랜 세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수많은 강의를 해왔지만 강의실에서 나 자신이 크게 변하지 않았고, 같은 내용을 반복적을 전달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는 그랬다. 내 인생은 객관화된 점수에 의해 결정되었다. 학벌과 점수가 곧 스펙이었던 것이다. 


 내가 상담했던 학생들 가운데 많은 수가 부모와 선생님의 기준에 의해 학과를 선택해서 공대에 입학하였고, 현실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여 자퇴하거나 전과하며 시간을 소비했다. 대학에서 교육시킨 인재는 실제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와는 거리가 있어 어렵게 취업을 시킨 학생들도 6개월을 못 버티고 퇴사하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키우는 노력에 소홀했으며, 사회의 변화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교육과정을 구축해오지도 못했다.

기업이 인력을 채용하고 활용하기까지 해당 분야의 교육훈련에 투자되는 비용은 기업의 몫이 되어 소비자 원가를 높이고 생산성을 저해하는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켰다. 과거 학생을 취업시키기 위해 만났던 많은 기업 관계자는 전공에 대한 능력보다도 성실함과 인성을 우선 채용조건으로 이야기했다. 대학에서 교육한 전공의 질적 수준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며, 어차피 기업에 필요한 전문지식은 채용 후 기업에서 다시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몇 년 전에 발표한 “대졸 청년의 전공 일치 취업 실태 분석”에 따르면 자기 전공분야에 취업하여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은 50% 정도이며, 자기가 선택한 전공을 후회하는 비율이 50.3%에 이른다고 한다.


 교육당국에서도 시대적인 요구를 반영하고, 기업의 현실에 필요한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대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인식하여 주문식 교육을 비롯한 현장 중심의 인재육성 방안을 찾으려는 시도가 계속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기업들은 만족하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주입시키려는 대부분의 전문지식은 유튜브나 구글, 네이버와 같은 지식 포털 사이트에 충분히 넘쳐흐른다. 굳이 강의실에서 교수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해당 분야에 흥미와 열정이 있다면 혼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우리의 대학은 변해야 한다.


내가 아는 일부 미국 대학의 공학분야는 기업과 매칭 한 프로젝트 베이스의 과정이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학생은 학기초 관심 있는 분야의 기업과 매칭이 되어 회사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자신들이 구성한 팀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학점을 받는다. 기업이 원하면 프로젝트는 다음 학기까지도 연장된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와 학교가 배출하는 인재 사이에 능력의 갭을 최소 하기 위해 노력이 실질적이고 매우 긴밀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다.


이제는 대학에서 추구하는 인재의 능력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의 능력 사이에 갭을 줄여야 할 때다. 젊은이들이 점수화된 스펙을 만드는데 매달리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리더와 기성세대는 미래의 가치 있는 선택을 위해 젊은이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으며 그에 맞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 점수화된 스펙 구성을 대신할 키워드 권고 안>

자기 분야의 전문성과 창의성, 협력과 조화의 열린 마음, 일에 대한 열정과 신념, 미래지향적 목표, 자아실현과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 활동, 인내와 끈기, 호기심과 도전을 위한 용기,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 추진력, 지적 겸손도. 세계화.


회사가 요구하는 능력은 이들 키워드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이들 키워드 하나하나에 스스로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내분야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나는 조직에서 협력하고 조화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졌는가?....


결국, 미래사회에서 스펙은 기록된 문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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