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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Aug 29. 2020

 미국 Bed & Breakfast에서..

공감과 선택 6

 B&B는 도시보다는 시골이나 산간벽지 등지에 있는 집을 여행자에게 대여해주는 한국식 민박을 말한다. 



 17 년 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잠시 거주하던 때 동부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B&B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의 문화에 낯선 여행자 입장에서 B&B를 숙소로 정해서 가족이 여행하는 것은 나름 용기가 필요했었다. 


요즘은 세계 어느 곳의 숙박장소도 블로그나 SNS를 통해서 숙소 전경이나 사용자 만족도 등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하고 예약이 가능하도록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지만, 그 당시 B&B는 대부분으로 예약도 직접 전화를 통해서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펜션처럼 운영되는 Air BnB와 다른 점은 주로 집주인이 주거하는 곳의 독립된 방을 대여하고 아침식사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가족과 함께 한 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날 숙소로 예약한 곳은 West Virginia의 Shinnston이라는 한적한 산골마을에 있는 미국의 전통적인 주택이었다. 노인 부부가 1층에 거주하며 2층을 B&B로 활용하고 있었다. 약 80불 정도에 예약했던 기억이 난다. 헤어지면서 팁을 포함해서 100불을 드리고 나왔지만..


그런데, 동부를 모두 돌고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다녀오는 긴 여정에서 볼 것 많았던 여행지도 아니고 경유지의 마지막 숙박장소인 작은 산골마을 B&B가 아직까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왜 일까?


사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B&B에서 숙박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었다. 장거리 여행에서 중간에 호텔을 잡는 것이 여의치 않아 부득이하게 용기를 내어 컨택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광고에 있는 곳으로 전화를 해서 숙박인원과 날짜, 가격 등에 대해 확인하고 예약을 확정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예약한 B&B의 주인 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몇 가지 질문이 있다며..

"커피는 어떤 취향인지?"

"알레르기 음식이 있는지?"

"아침으로 원하는 음식이 있는지?"

등의 질문이었다. 나는 야채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미국 문화에 대해 잘 몰랐던 터라 아침에 야채를 먹겠다고 대답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까다로운 손님의 이미지를 주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전혀 뜻밖의 질문이었고, 왠지 특별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B&B를 제외한 모든 일정 속에 숙소는 비딩을 통해 결정했고 숙박료도 지불한 상태에 출발한 여행이라 하루라도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여행길이 고생길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이었다.


 요즘처럼 내비게이션이 어디든 원하는 곳을 안내해주는 상황이 아닌 조건에서의 장거리 여행은 다음 숙소까지 찾아가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미국 자동차 여행자들은 트리플 에이(AAA)에 가입해서 펑크 난 타이어 교체 등 장거리 여행에서의 차량관리와 각 주별 상세 여행정보가 담긴 Tour Book 등을 제공받아 여행을 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도 AAA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AAA에서 얻은 지도는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지방의 산길 등이 표시되지 않았거나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 제법 되어 한적한 시골의 숙소를 찾다 보면 헤매기가 일쑤였다. 그럼에도 이 지도가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는 유일한 내비게이션이었다.



길었던 여행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숙소인 B&B로 향하는 길에 아이 둘은 뒷자리에서 잠든 지 오래고, 밖은 어두워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산길 속을 계속 운전해서 들어가다 보니 온갖 불안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마음속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내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도착해야 하는 예상시간을 한참 넘겨 운전 중이었다. 

"여보, 이길 맞아? 지도에 표시된 대로 가고 있는 거지?" 오후 6시면 도착할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밤 9시가 다되어 간다. 산속이라 핸드폰도 먹통이고 숙소에 연락도 안되고 그저 산속 외길을 운전하고 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저녁 10시 전에 숙소를 찾았지만 온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렇게 들어간 B&B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밝은 미소와 함께 노인 부부가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주인 할머니의 안내를 받아 2층의 방 2개를 쓰기로 했고, 이어 할아버지가 집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셨다. 대단한 자부심으로 집에 대한 역사를 말씀하셨는데 대충 이러했다. 

숙소가 있는 지역은 웨스트 버지니아주 해리슨 카운티의 웨스트 포크 강을 따라 생긴 과거의 석탄도시인데  이 집은 1912년에 지어진 건물이고 Shinnston 시장을 지낸 Troy Gillum부부가 1918년에 구입하여 살았으며, 1994년에 자신들이 이 집을 구입하여 1996년부터 B&B를 열었다고 한다.

1912년에 지어진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튼튼해 보였고, 실내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2층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침실에 마련해둔 장미꽃은 불안감 속에서 장시간 운전했던 피로감을 모두 씻어 주기에 충분했다. 아이들 방에는 과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가족 모두는 흡족했다. 할머니가 내일 아침을 몇 시에 준비하는 것이 좋은지를 물으셨고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관광지가 아닌 한적한 시골이라 우리 외에는 다른 손님이 없는 듯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주변의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마을 이 모두 컴컴한 것으로 보아 얼마나 산골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 모두 단잠에 들었다. 밤사이 안녕하지는 못했다. 2층 화장실 문이 잠겨있어 부득이 1층 화장실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녘에 1층 화장실로 내려가 문을 열었는데 주인 부부의 침실 문을 잘못 열었던 것이다. 화장실을 찾느라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깬 할아버지가 나를 외부 침입자로 오해하고 문을 열자 내게 총을 겨누고 계신 게 아닌가?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짧았던 밤이 지났다. 화장실 사건으로 잠을 설쳐 조금 늦게 일어났다. 가족 중 누군가가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면서 문이 잠겼던 모양이다. 

창문의 커튼으로 새어드는 아침 햇살이 유난히 밝게 빛났다. 

1층에서 할머니가 시나몬 머핀을 굽는 듯했다. 2층으로 올라오는 고소했던 머핀 굽는 냄새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 머핀은 우리 가족을 위해 아침에 새로 구웠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침을 준비하고 계시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돕고 있다. 아침인사를 나누고 어젯밤의 화장실 사건을 이야기하며 한바탕 웃었다. 집안은 고풍스러운 오래된 가구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기억에 남는 것은 특히 다양한 종류의 많은 인형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그 많은 인형을 직접 만들었고 지금은  할머니가 시어머니로부터 인형 만드는 법을 배워 취미로 만들고 계신다고 한다. 

아내는 할머니와 요리 이야기를 하는 듯했고, 할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집안 이것저것들을 설명하시고 있다. 마치 한국에서 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참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커피를 준비한 것은 감동이었다. 전화통화 시에 아내가 주문했던 것과 내가 주문한 것을 나누어 준비하신 것이다. 할머니가 야채를 구할 수 없어 야채 대신 마당에서 기른 블루베리를 따서  식탁에 올렸다고 한다. 격식 있게 차려진 아침은 특별했다. 촛불까지 켜서 정성껏 차려진 멋진 아침상을 받아보다 다니! 감동이었다.

무엇보다도 식사하는 동안 두 부부가 함께 자리해서 자신들의 자식과 손자 이야기도 하며 편안한 말벗이 되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우리가 머물렀던 웨스트 버지니아의 어느 산골마을에서의  짧은 하루 밤은 배려심 깊은 부부의 따듯한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미국에 와서 처음 느껴보는 "정"이었다.

"정"이란 말을 대신하는 영어단어는 없는 듯하다. 굳이 말한다면 "feeling", "spirit", "attachment"정도가 유사한 단어가 아닐까 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정"은 "사물이나 대상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지만 그 뜻을 온전히 전달하는 설명 같지는 않다. 부모 자식 간의 정, 부부간의 정, 미운 정 고운 정 등 조금씩 그 느낌이 다르고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어렵지만 우리는 감성적으로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가면 부부는 사랑보다 깊은 정으로, 장성해서 곁을 떠난 자식은 어머님의 정든 음식을 그리며 살아간다.


아침 식사 후 마을 주변 강가를 산책하고 떠날 차비를 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이별은 항시 애잔하다. 

할머니는 가는 길에 배고플 때 먹으라며 아침에 우리를 위해 구운 머핀을 봉지에 담아 건네신다. 사우스 버지니아의 한 시골마을에 사시는 할머니가 우리를 위해 구워주신 머핀은 따듯한 "정"으로 오랫동안 내 마음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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