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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Aug 27. 2020

집을 짓다.

공감과 선택 5

" 아이들이 삽살개와 뛰어노는 앞마당 넓은 집을 짓고..."

연애시절 미래를 꿈꾸며 아내에게 썼던 연애편지의 한 대목이다. 결혼하고 41살이 되는 해에 그런 집을 지었다. 그리고 삽살개도 입양해 왔다. 청 삽살개 이름을 소백이라고 불렀고, 뒤에 하얀색 차우차우 한 마리를 더 입양해서 백산이라고 불렀다. 백두대간의 끝자리에 있는 "소백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돌이켜보건대 집을 짓는 일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집이 완성되고 한참을 살아봐야 비로소 그 선택들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아파트가 주는 편리한 주거공간에 익숙하게 살아왔다면 땅을 구입해서 집을 직접 짓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근무지, 자녀 학교, 병원, 문화생활, 부부간 의견 일치 등 많은 생활 여건들과 타협점을 찾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쉽게 배우기 힘든 다양한 지식들을 얻게 되는 뜻밖의 수확도 있다. 집을 지으며 해야 하는 많은 선택이 의외로 많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풍수를 중요시 여기는 한국사람들의 정서 상 집터를 마련하는 일은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못지않게 중요한 선택이다. 그렇다 보니 전공과는 아무런 상관없어 보이는 택리지와 같은 풍수 관련 책을 항시 끼고 다녔고, 땅은 인연이 있어야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운명적 만남을 고대하기도 했다. 양택의 조건을 섬세하게 살피며 땅을 보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후에 풍수에 밝은 고승 한분이 오셔서 좋은 땅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이후 집을 완공하기까지  아내의 반대와 자금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선택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아내가 반대하는 이유는 모두 타당했고 지금 전원주택을 지어야 하는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현실적인 여건을 외면하고 "자연과 함께 더 낭만적인 삶을 만들어 보자"거나, "연애편지에 썼던 일방적인 약속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아내뿐 아니라 주변 많은 사람의 반대를 뒤로하고, 봄에 착공해서 여름에 완공을 했다.


내가 소백산 자락에 전원주택 하나를 짓겠다는 소식을 들은 친한 동료 한 명이 전원생활은 시골집을 렌트해서 경험해보고 그 돈으로 훨씬 투자가치가 높은 서울의 아파트를 구입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강남에 모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려 하는데 28평짜리가 2억 5천 정도 한다고..

재택이라는 단어도 익숙지 않은 나였지만 아파트가 많이 오를 거라는 말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집을 지어야 할지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뒤에 이 아파트를 샀던 동료는 15년 뒤 몇 배의 돈을 남기고 팔았다.)



땅이 꽁꽁 어는 동절기와 우기를 피해 봄에 집을 짓기로 했다.

집의 형태는 무엇이 좋을까? 철근 콘크리트, 목조,......

이번 선택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환경친화적이며 노후를 생각해서 건강에 좋은 자재로 집을 짓기로 이미 마음먹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흙과 나무로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유지 보수에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정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집 들어설 터와 크기에 대한 설계를 직접 했다. 생각을 종이에 대충 그렸다.  건축허가를 위해 급한 대로 건축과 동료 교수한테 부탁해서 스케치를 도면화했다. 다행히 허가는 받아 착공했지만 내가 그린 도면대로 시공을 하다 보니 계단 높이가 무릎 높이가 되거나, 공간의 개념 없이 스케치한 것들이 실용성의 측면에서는 엉망이 되었다. 결국 건축 도중에 이대로는 시공 불가하다고 중단하는 사태가 생겨 뒤늦게 수습하느라고 진땀 뺐다. 여하튼, 우여곡절 속에 나온 집이지만 바닥에는 숯을 넣고 순수 황토로 내장을 마무리해서 건강을 테마로 한 멋진 집의 완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시행착오로 시공비는 더 들었지만 그만큼 많은 건축 지식을 머릿속 데이터 베이스에 담으로 수 있었다. (건축 설계는 반드시 전문가와.. )


집을 짓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시간이 지나가며 내 집은 점차 지인들의 여름 휴가지 중에 한 곳이 되어갔다. 하지만 매주 바비큐 파티가 있었고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이런 삶이 나쁘진 않았다. 집에 다녀가는 사람들이 이구동성 하는 말이 있다.

"나도 은퇴하면 전원주택을 짓겠다고.."

그런데 나는 은퇴 후 전원주택을 짓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젊어서부터 전원생활이 몸에 배어있다면 괜찮겠지만 나이 들어서 익숙하지 않은 전원생활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을 짓겠다고 결심하면 무수히 많은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다. 건축 시점, 위치, 형태, 예산, 설계 시공사 결정, 실내 인테리어.. 등 실제 착공하기 전까지 하룻밤에도 수십 채의 집을 짓고 허물기를 여러 번 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행하는 선택은 그 선택 하나하나가 직접적으로 현실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살면서 두고두고 후회거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본인이 선택한 화장실 변기 하나가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 기도 한다.


후회 없는 선택!

선택의 과정은 자신의 경험을 이용한 합리적 추론에 감성적 공감이 더해져서 가장 만족한 답을 구하는 행위이다. 지금까지 행해진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과거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삶을 살면서 앞으로 하게 될 선택들이 모두 최선이 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우리에게는 없다. 따라서 선택을 앞두고 항상 자신의 인지 사고능력에 대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행복이자 고난이다.

위치를 정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당장 아무리 훌륭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주변 답사에서 환경 유해 요소가 있는지, 소음이나 냄새를 배출하는 시설이 있거나 들어설 계획이 있는 곳인지 등..  수없이 많은 인지능력을 필요로 한다.


사람의 인지 사고능력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집을 짓고 한참 뒤의 일이기 때문에 집을 지으면서 했던 결정들이 모두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했던 모든 선택들에는 좋은 운이 따랐던 것 같다.  불안전한 선택들이 모인 결과였지만 그래도 집을 지은 것은 내 인생에 커다란 자랑거리다.

 


선택 1 (토지구입):   고승의 말처럼 나에게는 좋은 땅이 되었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동안 모든 가정사와 개인의 삶에 나쁜 일은 없었고, 좋았던 일 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땅을 구입하는 선택의 과정에서 나의 창의적 사고나 인지능력이 작용했다고는 볼 수 없다. 운이다.


선택 2 (아파트 매입 대신 신축 결정) : 그때 아파트를 매입하고 전원주택을 더 늦게 지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투자 관점에서는 분명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지만 전원주택이 주는 혜택은 돈 이상이었다. 나를 유능한 목수, 미장 기술자, 도배 기술자, 조경전문가, 건축기술자... 등 뭐든 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만들어 주었고, 퇴근해서 원두막에 올라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을 마주하며 맥주 한잔을 하는 사색의 시간은 돈과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


선택 3 (황토 흙집의 선택) : 오랫동안 살아보니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자연적인 습도 조절이나 보온 효과는 우수해서 건강에 좋은 건 사실이다. 잠도 잘 오고 놀러 온 사람들 말로 주량도 는다고 한다. 관리하는 측면에서 게으른 사람은 절대 흙집을 짓지 말기를 권한다. 놀러 오는 사람은 좋아도 관리하는 사람은 골병들 수 있다. 전원주택이 그렇다. 잠시 와서 즐기고 가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지만 집주인은 잔디관리, 풀 관리, 텃밭관리, 집수리 등 참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면 전원생활의 낭만은 낭만으로만 간직하기 바란다. 다행히 난 천성이 게으른 편이 아니라 무난한 전원생활을 즐겼다.


선택 4 (건축설계) : 설계비를 절약하기 위해 직접 스케치해서 도면을 만들기로 한 결정은 집을 건축하는 데 있어 가장 나쁜 선택이었다. 좋은 집을 원하면 전문가와 제대로 된 설계를 해야 한다. 생각을 시공 현장에 담아서는 절대 안 된다. 설계도에 담아야 한다. 설계도가 전부다. 요즘은 시공사가 제공하는 표준 설계도면들이 다양하게 있어서 이런 시행착오는 격지 않아도 되지만, 그때에는  황토흙 집을 짓는 것 자체가 흔치 않고 표준 도면을 구하기도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선택 5 (건축 시점) : 참을성이 없었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도 자금사정이 좋아질 때 착공했어야 했다. 더구나 집을 완공하고 바로 교환교수로 해외에 거주하게 되어 1년을 비워 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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