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공감
그러나 10년이 지금, 2020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그의 예측과 주장에 대한 반론이 고개를 든다.
국가의 미래는 지정학적 여건보다 정치지도자와 국민이 좌우하는 것이라고...
최근 미국의 코로나 대처 과정과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점차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미국 현실의 중심에는 정치지도자와 국민이 있다고...
미국의 토론문화를 부러워했던 사람으로서 지켜본 대선 토론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TV를 보던 초등학교 어린이들마저 할아버지들의 말싸움을 비판했다니 말이다. 토론문화를 중심으로 발달한 민주주의 중심국가로서 미국을 의심하게 한다.
밤새 대선 개표과정을 지켜보며, 이번에도 빗나간 미국 여론조사의 엉터리 예측에 또 한 번 실망했다. 여론조사는 어떤 경우에도 오차범위 내에 존재해야 의미가 있다. 오차범위는 예측하지 못한 다른 요인들에 대한 포괄적인 불확실성을 감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개표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두 후보 간 전국적인 차이는 2% 정도다. 그동안 발표한 많은 예측과는 크게 빗나간 것이다. 승리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부분 여론조사기관에서 바이든이 크게 유리한 것으로 발표해 왔지만 막상 결과는 혼전 양상이다. 아직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이고, 최종 승자를 결정하기까지 험난한 일 들이 발생할지 모르는 현실이다.
펜실베니아, 플로리다 등 주요 접전지의 결과도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상황을 보건대 바이든이 힘겹게 이길 것으로 개인적인 예측을 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이긴다면 과연 트럼프가 승복할지는 미지수다. 말 그대로 미국 사회는 혼돈 속에 놓이게 될게 뻔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이러한 혼돈은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로 원인을 돌린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런 리더를 선택한 미국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그래서 선거는 중요하다. 눈을 똑바로 뜨고 올바른 선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얼마 전 조국 사태를 통해 민심이 양분되어 소모적인 시위를 했던 한국의 상황이 묘하게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 대처를 두고 양분되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국민들은 팩트를 잊고 진영과 논리만 따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행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책무를 다하도록 국민에게 권한을 부여받았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찬성하는 편에 선 사람들과 똑같은 세금을 내고 같은 권리를 가진 국민이다. 어떤 경우도 국민이 내편과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정책이든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고,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갈등이 생길 수 있지만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역할 또한 정치하는 자들의 책무일 것이다. 반면, 정권의 유지나 창출을 위해 갈등을 이용하는 정치세력을 구분하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국민의 책무일 것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선이라는 이슈는 대중을 더욱더 폐쇄적 공감의 울타리에 가두고 만다. 정치인 들은 자신들의 울타리에 더 많은 표를 가두기 위해 울타리를 화려하게 치장한다. 그리고 그 울타리에 현혹되어 안으로 들어가면 높은 울타리 밖의 세상은 볼 수가 없게 된다. 정치는 사이비 종교처럼 폐쇄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