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 Chun Nov 05. 2020

미국답지 못한 현실

선택과 공감

국제문제 전략가이며 지정학적 예측가인 George Friedman의 저서 "The Next 100 Years: A Forecast for the 21st Century"에서 그는 적어도 향후 1세기 동안은 미국의 번영이 지속될 것이며 이에 대적할 나라는 없다고 주장한다. 10년 전 지정학적인 여건을 중심으로 그가 예측한 미래의 국제사회 변화에 대해 큰 반론 없이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10년이 지금, 2020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그의 예측과 주장에 대한 반론이 고개를 든다. 

국가의 미래는 지정학적 여건보다 정치지도자와 국민이 좌우하는 것이라고...

최근 미국의 코로나 대처 과정과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점차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미국 현실의 중심에는 정치지도자와 국민이 있다고...


정치에 대한 칼럼이나 논평을 하는 전문가의 관점이 아닌 이방인의 입장으로 마주한 최근 미국의 정치현실은 매일매일 "실망과 경악"의 연속이었다.


대선 주자들이 제시하는 미국의 가치와 비전은 찾아보기 힘들고, 수조 원의 돈을 들여 원색적으로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TV광고를 연일 내보낸다. 코로나로 수십만 명이 죽어나가는 과정에서 마스크 착용 여부가 여전히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고, 대통령과 소속이 다른 정당의 주지사들은 서로 다른 나라인양 충돌한다. 


주지사를 납치하기 위한 무장세력이 출연하는가 하면, 흑인 인권문제 시위와 약탈이 일어나고, 백인우월 주위자들의 인종차별적 폭행과 수많은 음모론자들의 이야기, 대통령이 올리는 트윗 게시물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혼돈 속에 매일 아침 눈을 뜬다. 공정한 보도가 생명인 방송국 신문사들까지 지지하는 정당의 색깔을 부각하고 반대 정파들을 공격하는가 하면 대통령은 미국을 편 가르기 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토론문화를 부러워했던 사람으로서 지켜본 대선 토론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TV를 보던  초등학교 어린이들마저 할아버지들의 말싸움을 비판했다니 말이다. 토론문화를 중심으로 발달한 민주주의 중심국가로서 미국을 의심하게 한다.


밤새 대선 개표과정을 지켜보며, 이번에도 빗나간 미국 여론조사의 엉터리 예측에 또 한 번 실망했다. 여론조사는 어떤 경우에도 오차범위 내에 존재해야 의미가 있다. 오차범위는 예측하지 못한 다른 요인들에 대한 포괄적인 불확실성을 감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개표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두 후보 간 전국적인 차이는 2% 정도다. 그동안 발표한 많은 예측과는 크게 빗나간 것이다. 승리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부분 여론조사기관에서 바이든이 크게 유리한 것으로 발표해 왔지만 막상 결과는 혼전 양상이다. 아직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이고, 최종 승자를 결정하기까지 험난한 일 들이 발생할지 모르는 현실이다.

펜실베니아, 플로리다 등 주요 접전지의 결과도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상황을 보건대 바이든이 힘겹게 이길 것으로 개인적인 예측을 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이긴다면 과연 트럼프가 승복할지는 미지수다. 말 그대로 미국 사회는 혼돈 속에 놓이게 될게 뻔하다.


 게 보면 나는 지금 자유민주주의의 끝판왕을 경험하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혼돈의 세상 중심에 있는 것이다. 

온통 정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의 정치 뉴스들을 매일 접하며, 적어도 미국에서 평등의 가치 아래 뉴스는 팩트를 전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과거의 순진했던 생각을 반성하게 하는 일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이러한 혼돈은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로 원인을 돌린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런 리더를 선택한 미국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그래서 선거는 중요하다. 눈을 똑바로 뜨고 올바른 선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얼마 전 조국 사태를 통해 민심이 양분되어 소모적인 시위를 했던 한국의 상황이 묘하게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 대처를 두고 양분되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국민들은 팩트를 잊고 진영과 논리만 따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행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책무를 다하도록 국민에게 권한을 부여받았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찬성하는 편에 선 사람들과 똑같은 세금을 내고 같은 권리를 가진 국민이다. 어떤 경우도 국민이 내편과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정책이든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고,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갈등이 생길 수 있지만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역할 또한 정치하는 자들의 책무일 것이다. 반면, 정권의 유지나 창출을 위해 갈등을 이용하는 정치세력을 구분하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국민의 책무일 것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선이라는 이슈는 대중을 더욱더 폐쇄적 공감의 울타리에 가두고 만다. 정치인 들은 자신들의 울타리에 더 많은 표를 가두기 위해 울타리를 화려하게 치장한다. 그리고 그 울타리에 현혹되어 안으로 들어가면 높은 울타리 밖의 세상은 볼 수가 없게 된다. 정치는 사이비 종교처럼 폐쇄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서는 안된다.


거짓과 위선이 정치지도자들을 매개체로 코로나보다 더욱 심각하게 미국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빛(색)과 소리, 건강한 삶(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