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는 아이큐가 매우 낮은 동물로 인식되어 사람 사이에 지능이 낮다고 폄하하여 말할 때 "새대가리 같다"라고 한다.
공학자로 살아온 나는 이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난해 봄, 뒤뜰에 로빈후드라는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했던 적이 있다. 가든 일을 하던 중 새가 떠난 빈 둥지를 마주하고 순간 혼자만의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이렇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지혜롭게 집을 짓는 새의 본모습을 재발견한 순간이었다. 여태껏 "새대가리"라는 말을 사용해 온 것은 분명 우리가 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얼토당토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오랜 세월 안전한 건축물을 축조하기 위해 터득해온 지혜와 구조역학적 접근 방법을 새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둥지를 살펴보면 볼수록 고대에 사람들이 쌓아 올린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에 버금갈 만큼 신비롭기 그지없다.
사진 1. 입지조건
자신이 부하시킬 새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적인 부분과 새끼들과 자신의 몸무게를 모두 지탱할 만큼의 견고하고 적합한 크기의 둥지를 정확히 예측하여 만들었다. 계량한 듯 적합한 크기의 둥지는 비바람에도 무너지거나 날려가지 않을 만큼의 구조적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여 완공해 놓은 것이다.(뒷부분에 설명하겠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다.)
설계를 포함해 자재의 조달과 시공까지를 온전하게 스스로 결정하고 혼자 힘으로 열심히 일해서 완공한 훌륭한 거처다.
오늘날 사람이 살 집을 짓는 데 있어 수반되는 수많은 의사결정들이 새가 만든 둥지에 고스란히 반영된 듯한 착각을 한다.
살기에 적합한 환경의 답사와 터 잡기, 집의 크기와 형태에 따른 구조역학적 설계와 측량과 계측 그리고 안전성 검토, 내 외장 재료의 결정 뭐 이런 사람의 집짓기 과정이 새가 지은 둥지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다만 다른 점은 사람의 관점에서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것에 비해 새는 새끼를 부화하기 위한 조건에 충실하게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사진 1은 새가 집을 짓기 위해 선택한 지혜로운 입지조건을 잘 보여준다. 분명 새도 사람과 같이 집터를 구하기 위해 많은 발품을 팔고 고민을 했을 듯하다. 주변이 많은 나무들로 에워쌓여 있는 곳이지만 집 모퉁이에 딱 붙어 있는 치자나무를 택해서 그 속에 집을 지었다. 건물의 모퉁이에 붙어있는 치자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림이 가장 적을 뿐 아니라 위장에도 매우 훌륭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는 집 가까이는 인기척이 있어 동물이 잘 접근하지 않는 곳이다. 둥지는 치자나무 중간쯤에 위치해서 비가 와도 나뭇잎이 빗물을 막아주는 곳이다. 이런 환경적인 선택은 생존에 필요한 본능적인 행위로 보이지만, 주거에 적합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택지를 결정하는 사고능력은 본능을 떠나 인간의 사고체계가 작동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집을 짓기에 적합한 장소가 결정되면 다음으로 집의 크기와 형태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오래전에 목조에 황토흙을 재료로 하여 직접 집을 설계하고 시공해 본 터라 집을 지어야 할 적합한 장소가 결정되었다 해도 그곳에 걸맞은 크기, 형태, 자재를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잘 안다. 물론 이러한 과정 하나하나가 새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일 것이다.
사진 2. 집의 크기와 형태
인간은 집 크기와 형태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개인의 정서적 선호 양식과 함께 자금여력이 큰 제약조건으로 작용할 것이고 이러한 제약조건이 반영된 설계도면이 건축설계사에 의해 만들어진다. 측량과 계측을 통해 도면에 맞는 터파기와 기초 공사를 시작할 것이다.
새가 완공한 사진 2의 집을 보면 놀랄만한 것들이 많다. 우선 집의 크기이다. 4마리의 새끼를 부화했는데 새끼 4마리가 들어갈 딱 맞는 크기였다. 새는 어떻게 그 크기를 측량했을까? 집의 형태에 대한 설계도는 본능적으로 새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다 해도 크기는 부화하는 알의 숫자에 맞추어 산정하고 공사를 한다. 신기한 일 아닌가? 새가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어떤 방식이든 측량과 계측을 통해 집의 크기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글쎄, 이미 크기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 알을 낳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사진 3. 에서 보듯이 4마리가 딱 맞게 들어가는 규모로 집을 완공했다는 점은 대단한 예지 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처음 부화 시 새끼의 크기가 엄지손가락 정도로 작았던 것을 생각하면 새가 충분히 성장했을 때를 상정해서 집의 크기를 설계했다는 말이 된다. (혹시 조류 연구하시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조언 바랍니다.)
다음으로 집을 짓는 재료에 대해 몇 개의 다른 새집을 관찰해본 결과 모두 같지는 않다. 즉 주변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를 조달하여 집을 짓는 듯하다. 틀림없이 집 지을 장소를 정하고 필요한 자재가 주변에 있는가를 탐색했을 듯싶다. 아니 자재를 먼저 보고 위치를 정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부분도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겠는가? 내가 집을 짓기 위해 오랫동안 건축자재 박람회를 비롯해 여기저기 쫓아다니던 생각이 난다. 새도 고생하면서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자재를 구하려 맴돌다 자재가 풍부한 우리 집을 택했을지 모른다.
사진 3. 부화한 새끼 4마리 보금자리
사진 3. 은 부화해서 어느 정도 성장한 새끼들이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어미새가 물어다 줄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집의 외장재를 살펴보자. 우리 집 가든에서 얻은 소재들로 엮어서 집을 만들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엮었다는 점이다. 사람도 손으로 짚을 엮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새가 오직 부리 하나로 엮은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서 쌓아 올리며 엮었느지 감탄사가 나온다. 오랫동안 매듭들이 풀리지 않고 견고하게 엮여 있음은 이놈이 구조 역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골조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마른풀의 줄기와 몇몇 가느다란 나무 조각 등을 이용해서 비바람을 견디고 새가 날아간 지금까지도 변형되지 않는 견고함을 보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새가 부리를 이용하여 이런 걸작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내장재는 사진 4. 에서 보듯이 내가 황토를 사용해서 집을 지었듯이 흙을 이용해서 마무리하고 푹신한 덤불들을 날라서 깔고 마무리했다. 자세히 보면 진흙과 짚을 한데 어울러 섞어서 벽 공사를 했다.
사진 4. 내장재 및 마감
내가 황토집 공사를 했던 방식과 거의 흡사하다. 새가 부리로 점성이 있는 흙을 날라서 짚과 함께 섞어 마감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이러한 방식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던 건축의 한 가지 양식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묘하게 마른 풀숲이 엮여 있고 그 사이마다 진흙을 발라서 완공했음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새집이 변형되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의 감탄사를 유발한 것은 사진 5. 에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파란색 비닐에 코팅된 가는 철사를 재료로 사용한 것과 집의 구조에 맞도록 철사를 활용한 것은 신의 한 수처럼 보인다. 새집이 안정되게 고정되어 있도록 가는 철사를 통해 나뭇가지에 엮어 놓은 것이다. 이 철사를 보는 순간 언젠가 "새대가리"라는 말을 사용하며 농담했던 나 자신의 무지함을 느끼며, 위대한 건축가에 대한 사죄의 마음까지 들었다.
이런 역학적 구조에서 철사가 필요한 것을 어떻게 새가 이해하고 알고 있었을까?
둥지를 나무에 고정하기 위해 부리를 이용해 가는 철사를 둥지에 엮어 나뭇가지에 고정하는 매듭 작업을 하고 있는 새를 상상해보라.
마치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 같은 이러한 철사 매듭은 반대편에도 있다. 새가 집을 안정성 있게 나무에 고정하고 마무리하는 데 있어 철사를 사용한 것은 새가 이미 철사라는 재료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기에 더욱 놀랍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새집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가지 틈새에 적합하게 시공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면 위험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집을 가지에 묶어둘 필요를 느끼고 매듭에 적합한 재료를 고르기 위해 헤매고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 짠하다.
과거 내가 건강을 테마로 해서 황토집을 시공하던 때에 이런저런 소재들을 찾아서 전국을 다니며 고생하던 추억과 교차되어 새가 떠난 둥지는 바라보던 나의 묘한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