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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Mar 29. 2022

결혼식 그리고 주례사

진부했던 나의 주례사.

우리말 표준 국어 대사전에 "어른"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나와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신체적으로 다 자랐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리판단, 경제적인 능력을 가져야 비로소 어른인 것이다.


"어른"은 사회의 구성원 가운데 원로라고 지칭하는 것과 달리 마땅히 따라야 하고 존경할 수 있는 분들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생각된다.


가정이나, 단체, 나아가 어느 사회에서든 어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갈등을 중재하고 중재되기 어려운 사안에는 판결자로서의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의 어른은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혼과 함께 가정을 구성하고 가족의 구성원으로부터 인정받고,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쉽지만 무척 험난한 길을 변함없이 꿎꿎하게 가야 한다.




예전 우리 선조들은 결혼을 하면 상투를 틀어서 어른이 되었음을 구분하기도 했다. 나이가 많이 먹어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른 대접을 받지 못했을 만큼, 그 시대에는 결혼이 어른으로 통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양반가의 도령들은 처자식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다 자라지 않고도 결혼을 통해서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유교적 사고방식을 떠나서 경제권을 가진 남편이 집안의 중심이 되고 어른으로 인정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부양의 의무는 남자가 지고 살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암묵적 사고 속에 남편과 아내를 "바깥양반", "안사람"으로 구분해서 불렀고,  결혼을 하면  "장가 왔다"는 말보다는  "시집왔다"는 말이  통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베이비 부머 세대까지 만의 공감대일 것이다. 


이제, 가정 경제를 부부가 함께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집안의 어른이란 개념이 희석되었다. sns로 연결된 사회에서 어떤 사안이든 어른의 생각을 넘어서 수많은 사람의 댓글들로 옳고 그름을 시비하거나, 사리판단의 기준을 공유한다.  




과거, 결혼식을 주관하고 신랑 신부의 새 출발에 도움 될 주례사를 맡게 될 분은 신랑 신부 측에서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사람을 고민 끝에 청했다. 주례사를 하는 분은 이혼한 적 없이 자녀를 잘 키웠으면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명망을 갖춘 어른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주례사는 요즘 시대에 공감받기 어려운 내용일지 모른다. 많은 주례사의 수식어와 미사여구는 달라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며, 아들딸 많이 낳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살라는 당부의 말이다.


하지만 사랑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어른의 당부 말로 되는 일인가?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공경받는 것 역시 어른이 당부해서 될 일이 아니고 자신의 행위로부터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지 않는가? 아들딸 많이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이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단지 의료 혜택이 좋아져서 이혼을 하지 않는다면 검은 머리 파뿌리는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오래전 아끼던 제자의 결혼식에 주례를 처음 서게 된 적이 있었다.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서 인생의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게 될 한 쌍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일주일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유명한 주례사 들을 모두 탐독했고, 고민 끝에 A4 두장 정도 분량의 주례사를 결혼식 전날 저녁에 완성하였지만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에 마주한 혼객들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 아이를 셋 이상 낳아라.

- 남편은 가급적 일찍 퇴근해서 아내와 저녁을 함께해라.

- 아내는 시부모님의 생신을 남편은 처가의 장인 장모님 생신을 꼭 기억하고 챙겨라.


일주일간 준비한 주례사를 접어두고 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주례사를 10분 남짓한 시간으로 마무리한 지 십수 년이 흘렀다. 


고지식했던  제자는 주례사에서 말했던 대로 딸 둘에 아들 하나 모두 셋을 낳아서 잘 키우고 산다. 설 명절에 인사하러 온 제자 아내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 퇴근 후 저녁을 함께하며 아이들 교육과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남편이 고맙다고 했다.

이런 제자의 가정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체가 큰 행복이다. 


사실,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제자에게 주례사를 빌어서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에 이런 진부한 주례사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다.


미국의 결혼식은 의식이라기보다 즐거운 파티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미래에 좋은 동반자로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며 법적인 증인 앞에서 증표를 나눈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신나는 파티의 시작이다.


최근 우리의 결혼 문화도 많이 바뀌어서 예식장에 가면 따분한 주례사를 듣는 대신 유쾌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재미난 볼거리가 풍성하다. 나도 이런 요즘 결혼식에 가는 것이 예전 진부했던 주례사를 긴 시간 경청해야 했던 예식보다 즐겁고 부담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혼식은 그 형식을 떠나 인간으로서 어른이 되는 관문에 서는 것이며, 누구와 결혼할 건가에 대한 결정보다 결혼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기 결심의 결의를 새기는 장이어야 한다.


주례사가 없는 결혼식에 공감하면서도 때로 진부한 주례사를 듣던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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