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수 없는 것

현존

by 정오의 햇빛

현존은 가르쳐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집에서 혼자 요가를 했다.
아주 천천히, 햄스트링 하나만 늘리는 시간이었다.
동작은 거의 없었고, 목표도 없었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냥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시간을 보냈다.

이상하게도 그게 내가 오래 바라던 요가였다.


그동안 나는 요가원에 다녔다.
수업은 늘 바빴다.
동작은 끊임없이 바뀌었고, 하나의 동작이 몸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음 동작이 시작됐다.
선생은 설명이 많았다. 요가 이야기보다는 발레 이야기를 했고, 근육 이름을 나열했고,
자기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계속 증명하는 듯 보였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 사람은 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있구나. 우리는 요가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이 사람의 일을 완성시키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구나. 이상한 생각 같지만, 그 감각은 분명했다.

그 수업에는 머무름이 없었다. 현존이 아니라 운영이 있었고,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 있었다.

나는 요가를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요가 선생의 현존을 보고 싶었다.
지금 이 시간 안에 몸이 들어와 있는 사람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현존은 가르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동작도 늘리지 않은 채
비로소 요가를 했다.


그때 알았다.
현존은 억지로 할 수 없다는 걸. 누가 시켜서도 안 되고, 배워서도 안 되고, 목표로 삼아도 안 된다는 걸.

현존은 할 일을 줄여서 오는 게 아니라 현존하게 되었을 때 외부의 움직임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요가를 하러 요가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할 일이 하나 줄어든 게 아니라, 의존하던 구조 하나가 필요 없어졌을 뿐이다.

현존은 성취가 아니라 기준이다.


기준이 바뀌면 세상이 조용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말이 무너진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