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가 기준이던 상태에서 몸 안이 기준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요가는 요가원에 가야 하고 선생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고 현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만들어준 구조안에 들어가야 했다.
그때의 기준은 지금 이 상태가 충분한가를 선생에게 판정받는다.
그래서 선생의 속도 수업의 구성 설명의 그럴 듯 함이 필요했고 나는 충실히 따라가야 했다.
지금은 요가원대신 몸 안에 머물러 감각을 느끼며 설명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동작이 맞는지보다 지금 내가 여기 있는가를 느낀다.
여기 있지 못하면 혼자 단 5분도 담요 위에 앉아 있을 수 없다.
기준이 안으로 들어오면 바깥의 구조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니다.
나를 현존상태로 데려다주는 장치가 이제 몸 자체가 된 것이다.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줄 것인가에서 나는 이미 여기 있는가로 바뀌었다.
여기 있을 수 없어서 끌어다 놓아줄 구조가 필요했다.
기준은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이건 나를 현존하게 하는가 아니면 나를 이동시키는가?
현존한다는 것은 의식이 지금 여기 몸에 머무는 것이다.
이동시킨다는 것은 몸은 여기 있는데 의식은 다음 동작에 가 있고 시간에 쫓기고 평가와
비교가 끼어들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의식이 계속 다음. 외부. 기준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느리다고 다 현존이 아니고 빠르다고 이동도 아니다.
현존은 안으로 모이고 이동은 바깥으로 흩어진다.
현존하게 한다는 것은 의식이 몸에 도착하는 것이고
이동시키는 것은 의식이 끊임없이 다음 바깥, 기준으로 끌려가게 만드는 것이다.
삶은 머리채를 붙들고 날아가는 폭풍 같았고, 나는 이제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서 있다.